
총격, 전쟁, 학살, 폭동, 군인.
장난감, 소꿉놀이, 놀이터, 운동장, 아이.
나열한 단어를 곱씹어본다. 땅과 하늘을 오가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이 세상에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관계, 그리고 절대 섞여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면 아마 전쟁과 아이 아닐까.
이 세상에 갓 피어난 사랑스럽고 어린 존재들과 피어난 모든 것을 짓밟고 파괴하는 전쟁은 대척점의 관계 그 이상으로 동떨어져야 할 터.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파괴와 정복의 욕망을 지닌 인간은 역사의 긴 세월동안 가문 또는 민족, 국가의 성장을 얼굴에 내세우고 전쟁을 일으켜왔다. 물론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할 정도로 세계사의 굵직한 변화와 과학의 발전은 전쟁을 기반으로 둔 것이 사실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쟁은 승리와 패배, 생과 사라는 거대한 개념에 휘말려 한 개인의 삶을 보잘것 없는 조그만 점로 여기고 짓밟아 온 역사 역시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 아주 하찮게 여겨지는 점들 중에서, 유독 더 작고 여린 점들이 있었을 테다.
혼돈으로 일그러진 세상과 모든 것이 파괴되는 전쟁의 날들을 이해하고 감당하기에는 아직 어린 생명들. 이 작고 어린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전쟁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 절대 겪어서는 안 될 것들을 보고 겪은 작고 낮은 높낮이의 눈동자는 무엇을 담고 있었을까.

극단 하땅세가 이끄는 연극 <위대한 놀이>는 쌍둥이인 어린 소년들의 순수한 시선에 포착된 전쟁의 맨 얼굴을 무대 위에 펼쳐낸다. 밀란 쿤데라에 비견되는 세계적인 소설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베스트 셀러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으로, 원작의 전체 이야기 중 쌍둥이 형제의 작문 노트를 구체화해 풀어낸다.
전쟁을 겪는 아직 어린 소년들은 어른이 전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념의 갈등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 전쟁에서 의미를 찾는 어른들의 시선과 다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감정이나 윤리적 판단이 제거된 채 전쟁을 바라보는 소년들은 순진무구한 시선을 통해 오히려 전쟁의 참상을 극적으로 부각한다.
쌍둥이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어린 아이가 노는 방식을 차용해 무대를 형성한다. 테이프를 사용해 가상의 구역을 만들어 내거나 없애기도 하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소꿉놀이를 하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쉽고 간단하게 가지고 놀 수 있는 테이프는 단순한 선 긋기가 아니라 세상과 문명을 가로지르는 굳건한 경계로 거듭난다.
국경, 분단, 민족 등 사회를 구별짓는 경계선은 상상과 거짓, 놀이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며, 마침내 매혹적이고도 고통스러운 <위대한 놀이>를 완성하게 된다. 연극은 전쟁의 참상을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볼 뿐 아니라 실제 무대 구성에까지 콘셉트를 심화해 주제 의식을 높인다. 전쟁과 놀이를 오가는 아이러니한 블랙 유머가 깊은 인상을 전하는 연극 <위대한 놀이>. 오는 6월 18일부터 28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전석 30,000원
제작
극단 하땅세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