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인 건 좋지만 외로운 건 싫다는 말이 그렇게 공감될 수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즐기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은 다른 방향으로의 즐거움을 전해준다.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야가 확장되기도 한다. 혼자 일 때는 느낄 수 없는 많은 감정들이, 함께 하면 느껴진다.
어떠한 고통의 순간에도 누군가가 함께라면 씻어버릴 수는 없어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힘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고, 혼자인 걸 좋아해도 외로움을 느끼나 보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혼자인 상황에서 고통을 어떻게 감내해야 할까. 상상해본 적도 없고, 고립의 상황에 놓인 적도 없으니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일 것임에 분명하다. 태미라는 한 여성은 23살의 나이에 41일간 고립된 상황에 놓인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없는 상황에, 표류된다.
'하자나'라는 이름을 가진 배를 타고 항해 중이던 태미와 리처드는 허리케인 레이몬드를 맞닥뜨린다. 혼란이 지난 뒤, 눈을 뜬 태미는 어지럽혀진 배와 상처 난 본인과 마주하게 된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태미는 사랑하는 연인, 리처드를 잃었다는 사실에 고통받는다.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배 파손, 상처, 생존 등 태미 앞에 놓인 상황을 헤쳐나가야 했다. 하지만 태평양 한가운데 표류, 결혼을 약속한 사람의 죽음, 물리적인 어려움을 한 번에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고통 속으로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p. 245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었어.
하지만 살아갈 이유를 느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태미를 지탱해 준 것은 '목소리'였다. 태미가 좌절할 때마다 그 목소리는 위로와 응원의 말을 건넨다. 이 목소리는 태미, 스스로의 목소리였다. 고립된 상황에서 결국 태미를 살린 건 목소리, 본인이었다. 누군가의 위로와 조언을 얻어도 결국에는 스스로 이겨내는 것처럼.
태미는 스스로 안쓰럽게 여기는 것을 그만두고 생존을 택했다. 살아갈 이유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어도 목소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생존을 위해 발걸음 하고, 때로는 울고 후회하고,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41일을 버텨낸다. 태미는 흐르는 감정을 억지로 잊으려 하지 않았다. 슬프면 슬퍼하고, 짜증 나면 짜증 내고, 행복한 기억 속에서는 행복해한다. 그렇게 본능을 따라 감정을 흘려보냈다.
p. 238
갑자기 속이 메슥거렸다. 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고립된 생활에 익숙해진 걸까? 표류하다 영영 사라지기를 내심 바랐던 걸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아이러니함. 죽음을 이겨내니 생존이 두렵고, 평범한 생활이 두렵고,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삶이 두렵다. 두려움이 지나가면 또 다른 두려움이 다가온다.
41일간을 스스로 생존하며 이겨낸 태미도, 두려움이 없을 것 같지만 또 다른 두려움이 생긴다. 누구에게든지 존재하는 두려움과 고난, 역경이지만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따라 살아가는 방향성을 정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어떠한 방향을 띄고 살아가려는지, 후회와 가정에 갇혀있지는 않는지. 주어진 기회를 따라 흘러가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불평하지 않고 상황과 시간 안에서 흘러가는 자연스러움.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한 노력이고, 두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크고 작은 역경이 다가올 때마다 무너지기에는 내 인생, 내 시간들이 아깝다.
p, 249
왜 몰랐을까? 우리 둘 중 하나라도, 아니 우리 둘 다 바다에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그토록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하지만 태미는 '그 무엇도 바다에 대한 내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열정을 마음껏 펼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열정으로 인한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더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무너지는 본인을 인지하고, 충분히 슬퍼하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녀의 삶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용기와 의지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