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전쟁을 겪지 못했기에 전쟁이라는 말이 낯설다. 피폐해진 삶이란 어떤 것일지 TV나 영화,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밖에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온전히 와 닿지 못하다.
이번 전시에서도 비록 간접적으로 전쟁 직후의 상황을 직면했지만 그 느낌은 조금 달랐다. 잿빛이, 피골이 상접한 듯 날카롭고 빼빼마른 사람들의 형상과 무표정에서 감정만은 생생하게 전이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시 초반에는 전쟁 같은 거친 상황에서도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는 베르나르 뷔페의 모습에서 창조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전시의 마지막에서는 창조에 대한 열망을 넘어서 삶을 포기 하지 않기 위해서 베르나르 뷔페는 그토록 열심히 그림을 그렸구나 생각했다. 그에게 그리는 행위란 창조행위가 아니라 삶을 살기 위한 이유였다. 스스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영감을 믿지 않는다. 단지 그릴 뿐이다.
얼마나 열심히 그리며 살았을지 그의 삶이 내 머릿속에도 그려졌다. 그에게 그림을 더 이상 그리지 못하는 그에게 삶을 영위할 이유가 없었다. 아마 본능적으로 자신이 보고 느낀 모든 것을 회화로 표현하게끔 프로그램 되어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삶,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을 통해서 피폐한 현실을 담담하게 들여다보았고, 자신이 다닌 길의 자취들도 그림으로 남겼다. 그 자신에게서 들어다본 이중성을 광대로 표현하여 모든 사람들의 겉과 다름을 꿰뚫어 보았으며,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얼굴을 그려 넣기도 했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은 문학작품들도 그의 손을 거쳐서 작품으로 재탄생하였다. 거친 세로줄로 그려진 얼굴 표정은 시니컬하기도 우울하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그마저도 매력적이었다.

La mort 10, 1999, Huile sur toile, 195x114 /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