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 잠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봅시다. 어떤 색들이 보이시나요? 당장 우리의 시야에 포착된 색들을 마치 포토샵에서 스포이드 툴을 쓰듯 모두 추출해 정리해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가늠할 수도 없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색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 곳곳에는 ‘색(color)'이 빠짐없이 존재합니다. 인간이 외부로부터 받는 자극 중 80% 이상은 시각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색은 인간의 눈이 가장 먼저 인식하는 가장 기본적인 시각적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색이라는 개념을 이렇게만 단정지어버리기엔 색이 가진 의미는 굉장히 무한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색은 많은 사회적 의미를 내포합니다. 신호등에서 빨간색이 ‘정지’, 황색이 ‘주의’, 초록색이 ‘진행’을 상징하는 것처럼 말이죠. 또 개개인이 지각하는 색에 대한 생각과 느낌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색은 개인의 주관, 또는 사회의 특성에 따라 새로운 메시지를 갈아입습니다. 특히 예술가에게 색은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입니다.
사비나미술관(www.savinamuseum.com)에서 10월 28일까지 진행된 전시 'color study' 는 색을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새롭게 해석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색’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색이 반대로 보인다면
주성욱 작가의 '反對色床(반대색상)'입니다. 모양만 보아서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구성의 밥상이지만, 모두 색이 이상합니다. 작가는 음식이 지닌 고유의 색을 완전히 반대되는 색으로 바꿔놓은 음식 모형을 통해 관객의 눈을 당황시킵니다. 분홍색 키위, 파란색 계란프라이, 초록색 생선구이… 실제로 이런 색의 음식을 만난다면 과연 잘 먹을 수 있을까요? 오로지 혀로 느끼는 것이 전부인 줄만 알았던 미각 체계에 ‘색’이라는 시각적 자극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사물에서 기능을 뺀다면
양주혜 작가와 정승 작가는 각각 ‘바코드’와 ‘경광등’이라는 일상적 사물을 소재로 색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상품의 정보를 담고 있는 바코드는 자본주의와 21세기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아주 먼 미래에 이르면 바코드는 결국 그 기능을 상실할 것입니다. 지금도 QR코드, NFC, 지문인식 등 바코드를 대신할 첨단 시스템들이 생겨나고 있으니까요. 기능을 상실한 바코드는 더 이상 자본주의의 상징이 아닌 하나의 조형 요소로 존재하게 됩니다.
긴급 상황 시 차량에 다는 경광등은 작가에 의해 그 색의 규범적 의미를 잃고,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하는 CCTV는 경광등 안을 비춤으로써 본래의 기능을 잃습니다. 전시장에 놓인 5m 높이의 경광등들이 뿜는 색들엔 더 이상 ‘경고’나 ‘위험’이라는 의미가 없습니다. 사회에 의해 부여된 전형적 이미지를 제거한 경광등에서 우리는 새롭고 독창적인 이미지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긴급 상황 시 차량에 다는 경광등은 작가에 의해 그 색의 규범적 의미를 잃고,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하는 CCTV는 경광등 안을 비춤으로써 본래의 기능을 잃습니다. 전시장에 놓인 5m 높이의 경광등들이 뿜는 색들엔 더 이상 ‘경고’나 ‘위험’이라는 의미가 없습니다. 사회에 의해 부여된 전형적 이미지를 제거한 경광등에서 우리는 새롭고 독창적인 이미지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이브(HYBE)와 닐 하비슨은 색과 소리를 결합해 우리에게 새로운 색의 세계를 선사합니다. 하이브의 <프로젝트 스크랴빈>은 러시아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알렉산더 스크랴빈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그는 소리를 들을 때 특정한 색을 인지하는 ‘색청’을 지닌 사람이었어요. 스크랴빈이 소리를 색으로 번역했다면, 하이브는 색을 소리로 변형했습니다. 화면 속 레코드판에 찍힌 이미지의 색값을 스크랴빈이 규정한 소리로 바꾸면 피아노가 그 소리를 자동으로 연주합니다.
닐 하비슨은 선천적인 전색맹(흑백으로만 세상을 봄)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이보그’라는 장치를 이용해 색을 소리로 변환함으로써 색의 에너지를 느낍니다. 작가는 색을 소리로 듣고, 각 음들을 미리 설정한 색으로 다시 구성해 시각화합니다. 이렇게 시각화된 작품을 통해 우리는 색과 소리가 결합된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아이보그를 통해 시각화한다면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닐 하비슨은 선천적인 전색맹(흑백으로만 세상을 봄)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이보그’라는 장치를 이용해 색을 소리로 변환함으로써 색의 에너지를 느낍니다. 작가는 색을 소리로 듣고, 각 음들을 미리 설정한 색으로 다시 구성해 시각화합니다. 이렇게 시각화된 작품을 통해 우리는 색과 소리가 결합된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아이보그를 통해 시각화한다면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색으로 규정한다면, 색을 규정한다면
문형민 작가의 'by numbers series' 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곤 하는 ‘통계’의 정확성에 대한 의문을 던집니다. 이 작품은 사비나미술관이 최근 10년간 전시도록에 사용한 단어와 색을 분석한 결과물입니다. 가장 많이 쓰인 10개의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된 색으로 전환해 미술관 벽면에 나타낸 것이죠. 이렇게 색으로 나타낸 결과물은 과연 사비나미술관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박미나 작가는 국내 색연필 제조사의 12색 색연필을 색칠공부 책에 칠하여 벽에 순서대로 배열했습니다. 색연필들의 색과 이름들은 모두 제조사에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작가의 결과물은 제조사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입니다. 소비사회에 의해 정해진 색의 질서를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12색의 색연필로 색칠공부를 하는 동안 이러한 태도를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건 아니었을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박미나 작가는 국내 색연필 제조사의 12색 색연필을 색칠공부 책에 칠하여 벽에 순서대로 배열했습니다. 색연필들의 색과 이름들은 모두 제조사에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작가의 결과물은 제조사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입니다. 소비사회에 의해 정해진 색의 질서를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12색의 색연필로 색칠공부를 하는 동안 이러한 태도를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건 아니었을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생각보다 ‘색’의 세계는 무한했습니다. 색은 소리나 맛과 같은 다른 감각에 끝없이 침투하고 있었고, 특정한 의미를 담은 채 사회에서 암묵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색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기도 하고, 반면 색에 의해 규정될 수도 있는 것이죠. 우리 주위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색을 어떻게, 얼마나 느낄 수 있는가는 개개인의 몫입니다. color study 에서 작가들이 던진 질문들을 곱씹어보며 일상 속 색의 의미를 다시금 되짚어봅니다. 어쩌면 색에 대해 더 많이 알아나갈수록 세상을 더 다채롭게 바라볼 수도 있겠죠? 그러니 한번 공부해봅시다(study), 색을(color)!
참고자료:
사비나미술관 www.savinamuseum.com
사비나미술관 www.savina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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