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을 내쉬다
폴란드, 천년의 예술展
김지현(ART Insight SNS운영팀)
<공연정보>
◦ 전시명 : 2015년 기획특별전 “폴란드, 천년의 예술 Polish Art: An Enduring Spirit”
◦ 기간 및 장소 : 2015.6.5~2015.8.30(12주간)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 전시품 및 규모 : 프레데리크 쇼팽의 <친필악보-마주르카 마단조 op.6 No.3>(1830)를 비롯한 중세부터 20세기까지의 폴란드 회화, 조각, 공예 250여점
ㅇ주최 : 국립중앙박물관, 바르샤바국립박물관, KBS한국방송, 아담미츠키에비치문화원
ㅇ주관 : KBS미디어, (주)ENA
ㅇ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주한폴란드대사관
ㅇ협력 : 크라쿠프국립박물관, 포즈난국립박물관, 바르샤바왕궁
ㅇ전시기간 : 2015. 6. 5(금) ~ 8.30(일)
ㅇ전시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ㅇ전시문의 : 1688-9891
ㅇ홈페이지 : http://www.polandart.co.kr
ㅇ입장료 : 성인(24세이상) 13,000, 대학생/중고생 11,000, 초등학생 8,000원,
유아 5,000원, 65세 이상 6,000원
※ 단체 20인 이상 할인
※ 문화의 날 50% 할인(현장 구매시) 당일 저녁5시~8시 입장객 대상
※ 다둥이 카드 소지자 할인 20~40% (현장 구매 시)
2자녀 가정 : 관람료 20% 할인
3자녀 가정 : 관람료 30% 할인
4자녀 가정 : 관람료 40% 할인
5자녀 이상 가정 : 관람료 40% 할인, 5번째 자녀부터 무료
ㅇ관람시간 : 화, 목, 금 : 오전9시~오후6시 / 수, 토: 오전 9시~오후9시
/ 일, 공휴일: 오전9시~오후7시 / 매주 월요일 휴관
/ 월요일개관 : 7/13, 7/20, 7/27, 8/3, 8/10, 8/17
비가 오다 내리다 했던 7월 10일, 친구와 함께 ‘폴란드, 천년의 예술 전시회’를 갔다 왔다. 실망한 부분도 있었고, 의외로 감탄했던 부분도 있었다. 5개의 테마로 나뉜 전시에 맞춰, 인상 깊었던 작품들에 대한 리뷰와 설명을 하려 한다.
먼저 폴란드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마침 전시회에서 상영된 동영상 중,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폴란드 역사’ 동영상이 있어서 첨부해본다. 아쉽게도 한글 자막이 없는 동영상이지만, 전반적인 폴란드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폴란드, 천년의 역사를 둘러보겠다.
1부 : 폴란드 예술의 기원, 중세 (Medieval Art)
폴란드의 중세 예술은 주로 교회 건축 장식이나 예배를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10세기 말부터 그리스도교가 전파됨에 따라 폴란드의 건축 양식은 당시 서유럽을 풍미하던 로마네스크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전시 내용 중 건축에 관한 부분은 자료가 별로 없었다.)
<로마네스크 양식(Romanesque style)>중세 유럽에서 11세기부터 12세기 중엽에 걸쳐 발달한 그리스도교 미술이다. 일반적으로 꼽을 수 있는 특징은 창문과 문, 아케이드에 반원형(로마 식) 아치를 많이 사용한 점, 건물 내부를 떠받치기 위하여 원통형 볼트와 교차 볼트를 쓴 점, 또 아치 때문에 생긴 어마어마하게 큰 힘으로 미는 바깥 방향으로의 추력에 견디기 위하여 굵은 기둥과 창문이 거의 없는 두꺼운 벽을 만든 점 등이다. 여러 양식의 교류는 특히 십자군이나 성지 순례에 기인하는 바가 크며, 그 전파는 수도회의 활약에 힘입었다. 이탈리아의 피사 대성당, 영국의 런던 탑 등이 그 대표적 건축물이다.
11-12세기에는 건축의 일부로서 돌 조각이 장식되었지만 13-14세기에 점차 교회가 웅장해지면서 그림과 조각 장식이 많아졌다. 특히 13세기에는 고딕 양식이 도입되었고 15세기에는 고딕 양식 조각의 전성기를 맞았다. 교회 건축의 중심인 제단은 여러 예술가들이 함께 제작한 아름다운 조각상들과 제단화로 꾸며졌다.
<고딕 양식(Gothic art)>로마네스크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 사이로, 12세기에서 15세기 무렵까지 서유럽 각지에 널리 퍼진 미술 양식이다. 이 양식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교회 건축인데, 이 건축 양식은 하늘 나라에 가려는 중세 사람들의 열렬한 신앙심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높은 천장과 수직 첨탑에 아치 양식을 가미하고 크고 긴 창문을 아름다운 채색 유리로 꾸며 내부가 밝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랭스, 아미앵, 루앵, 샤르트르 대성당 등이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중세 폴란드 예술 파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바로 <피에타>였다. 교양수업으로 들었던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뤘던 작품이 피에타였는데, 그 작품을 폴란드에서도 볼 줄은 몰랐다.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 작품 중 하나로써 고딕 조각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사실 <피에타>의 구도는 그리스도의 몸이 마리아의 무릎 밖으로 뻗어나와서 조각 작품으로서는 부자연스러운 형태가 된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작게 표현하고 옷을 이용하여 마리아의 무릎을 크게 보이게 함으로써 그런 부자연스러움을 조형적으로 없애려고 하였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 비교해 봤을 때, 확실히 폴란드식의 <피에타>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오른쪽) 피에타, 1420년경 하(下)실롱스크 조각가(1420-30년대 활동) 나무에 채색, 금박, 38.2×32.5×17.5cm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소장 PhotoⓒLigier Piotr
다음은 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에 기재된 <피에타> 작품설명이다.
본 조각상은 ‘아름다운 피에타’ 상의 스타일과 이데올로기적 의도를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비극적인 내용을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순교한 예수의 모습에는 극적인 요소가 빠져 있는 반면 비통에 젖은 어머니의 모습은 서정성으로 가득합니다.마리아의 소녀 같은 아름다움과 예술적으로 정교하게 포개진 그녀의 옷이 작품의 미적 표현을 보완하는데요. 또한 머리 스카프의 끝을 거의 공손하다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미묘하게 쥐고 있는 그녀의 손짓이 사람들의 넋을 빼놓고 있습니다. 작은 크기의 작품으로 세속주의의 인상이 풍기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적, 종교적 메시지는 간과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합니다.성모는 자신의 옷에 떨어진 아들의 핏자국을 보여주며(안타깝게도 이 부분은 보존되지 못했습니다.) 마치 불평이라도 하듯 자신의 고통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서사적 맥락(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에서 분리된 피에타 상은 개인 예배 시 종교적 재현물로 기능하면서 신자가 성모의 고통을 숙고하고, 경험하고,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입니다.
2부 : “사르마티안” 시대의 예술 (Art in the "Sarmatian" Age)
16-17세기는 폴란드가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며 정치, 경제적으로 전성기를 이룬 시기였다. 당시 폴란드 귀족들은 자신들이 고대 동방의 용맹한 사르마티아 사람의 후예라고 믿었다. 폴란드의 정신, 관습, 문화에 큰 영향을 준 이 사르마티즘은 여러 예술 장르에 잘 나타난다. 가문의 문장과 글귀를 넣은 초상화는 당시 폴란드 귀족의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르로서 동방의 영향을 받은 옷을 입은 영웅적 남성들과 이상화된 여성의 모습이 그려졌다. 특히, 장례를 매우 길고 화려하게 치렀던 당시 풍습의 영향으로 죽은 사람의 초상화를 관에 붙여 장식하기도 했다. 자신의 뿌리와 독자적인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사르마티즘은 정치적 압제에 시달리던 19세기에도 폴란드 전통의 중심에 있었다.
폴란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더 중 한 명으로 코사크, 타타르족, 모스크바를 상대로 한 일련의 전쟁에 참여. 그의 복장은 온통 진홍색인데, 당시 진홍색이 복장이 지닌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가장 돋보이게 해준다고 여겨지던 색이었기 때문. 그의 손에는 군사력의 상징인 금색 지팡이가 들려 있다.
사르마티안 시기의 작품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바로 엘리트 군인 ‘후사르’에 관련된 작품이었다.
<날개를 단 기병, 후사르 (The Winged Horseman, Hussar)>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전 유럽에서 용맹함을 떨쳤던 폴란드 기병대 '후사르'는 전성기 폴란드의 힘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스테판 바토리 왕 재위기간(1576-1586)에 처음 창설되어 여러 전쟁에서 가공할 공격력을 보여준 이들은 동방에 기원을 둔 값비싼 무기와 화려하게 장식된 갑옷을 착용했다.특히 후사르임을 나타내는 가장 큰 표식인 날개는 말 안장이나 갑옷에 부착되어 상대에게 공포감을 주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폴란드 군(후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의 가장 유명한 정예부대였다고 한다.
Husaria - the Polish-Lithuanian Winged Hussars
후사르의 갑옷 전시를 보고, 그들의 깃털이 보기에 멋지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많이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왜 하필 이런 깃털을 달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날개가 왜 달렸는가를 설명하는 이론이 몇 가지 있다. 어떤 이들에 따르면 이 날개는 타타르 인의 올가미를 사용한 공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차용되었다고 한다. 다른 이론에 따르면 돌격 시 이 날개에 달려있는 깃털들이 진동함에 따라 기묘한 소리를 내고 이를 통해 적을 두렵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기도 한다.하지만 1970년대부터 리인엑터들과 영화 제작자들, 그리고 가장 최근에 폴란드 역사가들이 수행한 실험을 해 보았을 때 이러한 이론들은 모두 현실적이지 않다고 밝혀졌다. 아마 이 날개들은 퍼레이드를 할 때 붙여놓고, 전투 중에는 떼어냈을 가능성이 높으나 등 뒤에 달린 호랑이 가죽이나 표범가죽, 랜스에 달린 홍백의 깃발이 적의 눈에 혼란을 주기 위해 달려있는 것으로 추정되므로 날개 역시 마찬가지 효과를 위해 달았을 가능성도 있어 여전히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사르마티안 시기의 전시에는 후사르의 복식 뿐 아니라 사르마티안 시대 사람들의 복식에 대한 전시도 함께 나온다. 이 시기는 장식예술도 발전했던 시기였는데,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도자기 예술이 많이 없어서 조금 실망했다. 도자기 공예는 전시관 밖의 아트 샵에서 조그맣게 전시되어있어서 많이 아쉬웠다. 반면 금속 공예는 전시실 안에서 다뤄졌는데, 굉장히 화려하고 정교한 감각이 돋보였다.
<전통 복식과 장식예술>16세기부터 폴란드 귀족들 사이에서는 터키나 페르시아 지역에서 유래된 의상이 유행했다. 몸에 밀착되어 있는 서유럽 귀족의 옷과는 달리 풍성하고 긴 옷자락이 강조된 폴란드 귀족의 복장은 그들의 부와 권위,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전통 복식으로 자리잡았다.
사르마티아 시대의 귀족은 아름답고 값비싼 물품뿐 아니라 해외에서 수입한 귀한 물건을 수집했다. 정교한 장식이 가미된 포도주잔과 접시, 병 등은 화려했던 당시 폴란드 귀족의 생활을 보여준다. 동방 취향의 유행으로 중국 도자기를 모방한 화병도 폴란드에서 제작되었다.
3부 : 억압의 시대에 핀 영혼의 왕국 (Art as “The Kingdom of the Spirit”)
18세기 후반 폴란드는 러시아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의해 영토가 분할되고 100년이 넘게 지도에서 사라졌다. 비록 국권을 상실한 시대였지만 당시 폴란드 예술은 그 어느 때 보다 화려하게 피어났다. 정치적 억압의 시대에 예술은 폴란드 국민들에게 민족 의식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이 시기의 시와 음악, 회화는 폴란드의 영혼을 간직한 국가 그 자체였다. 한편 강력한 후원자였던 교회와 귀족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예술제도와 향유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회화에서는 조국의 역사와 자연, 민속, 도시의 풍경 등 다양한 주제가 인기를 끌었다.
Pont 1 : 역사화특히 역사화는 19세기 폴란드 예술의 가장 중요한 장르였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역사화가 얀 마테이코는 지나간 폴란드의 영광을 되살려낸 작품들을 선보여 실의에 빠져있던 폴란드 국민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그의 역사화는 이후 오랫동안 폴란드의 역사적 기억과 상상력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폴란드의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인 얀 마테이코의 역사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자로 상징화시킨 폴란드이다. 1795년, 폴란드는 주권을 빼앗기면서 국가로서 존립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웃의 세 강국인 러시아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 의해 땅이 분할되는 치욕을 겪었다. 이 때 폴란드에는 외세로부터의 해방을 주창하는 봉기가 여러 차례 일어났는데,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많은 시민들이 사형선고를 받거나 시베리아로 추방당했다.
마테이코가 그린 이 상징적인 그림에서 누더기가 된 상복을 입고 있는 여인은 봉기에 패하여 외세에 속박되어버리고 만 폴란드를 형상화했다. 여인들의 처형을 지켜보고 있는 자들은 러시아의 군인들로서, 봉기를 제압하고 주동자들을 잔인하게 처단한 사람들을 뜻한다. 오래도록 미완 상태였고 대중들에게도 발표되지 않은 이 마테이코의 그림은 패망한 나라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그린 순교 그림의 예이다.
Point 2 : 풍경화역사화와 더불어 크게 유행한 그림은 풍경화였다. 그림은 애국적인 표현, 역사를 드러내 가르치는 것 이외에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여 역사화와 달리 풍경화는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Point 3 : 전통과 민속폴란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했던 폴란드 화가들은 폴란드의 전통문화, 민속 의상과 공예품, 마을 소녀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이번 전시의 표지가 된 “워비치의 소녀‘ 역시 이 시기의 그림이다. 전통 의상인 피나포어(Pinafore)를 입고 있는 마을 소녀를 그렸다. 장식적인 느낌이 든다.
폴란드 전통 춤
4부 : “젊은 폴란드” 시기의 예술 Art of the ("Young Poland" Period)
19~20세기는 폴란드 회화의 ‘황금 시대’였다. 먼저 19세기 후반, 회화는 가장 대중적인 예술 장르가 되었다. 애국적 주제의 작품 이외에도 초상화와 누드화, 정물화, 이국적이고 동양적인 주제의 작품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미술관과 전시회가 많아지면서 예술을 향유하고 소비하는 계층이 넓어졌고, 대중과 수집가들의 미적 감각에 부응하는 다양한 회화가 19세기 폴란드 미술을 장식했다.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작품들이 많이 나온 시기이다.
이 시기의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였다. 상징성이 많은 작품인데, 여기서 늙은 여자는 기근, 질병, 죽음을 뜻하고 연꽃 다발은 결혼의 유대를, 파충류는 전쟁을, 화려한 나비는 세상의 위험성을 역설한다고 한다. 전통성을 띠는 작품부터 이렇게 상징주의적인 작품까지 다양하게 그려진 시기인 만큼, 눈에 띄는 작품들이 많았다.
정말 소장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전시회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비톨드 프루슈코프스키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유성의 모습을 한 여성을 그리고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천체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여겨졌으며 별이 떨어지는 현상에는 의인화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젊은 여성의 추락이 말 그대로 사회적 계급에서 '타락한 여자' 즉 윤락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녀가 손에 쥔 진주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에로티시즘이 짙게 베어 나오는 프루슈코프스키의 작품은 19세기 말 경 폴란드에 성행했던 살롱 미술의 훌륭한 예이다.
20세기로의 전환기에 폴란드 예술은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젊은 예술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애국적인 주제를 벗어나 예술지상주의를 추구했고 시와 음악, 신화 등 여러 예술 장르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작품세계를 창조했다. 유럽 모더니즘 미술의 흐름에 동참하면서 자기만의 정체성을 유지해갔던 이들로 인해 폴란드 예술은 전례 없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조피아 스트리예인스카는 폴란드 아르데코 시기의 중요한 예술가. 다른 아티스트보다 폴란드의 원형적인 모습에 집중한 것이 특징이다. 그의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폴란드의 원시적 문화를 함께 엿볼 수 있다. 위 그림은 폴란드 민속 춤 주제의 판화 일러스트레이션. 폴란드 전통 의상을 소재로 한 것으로 보인다.
5부 : 20세기의 폴란드 예술 (Polish Art in the 20th Century)
1918년 독립 이후 폴란드 예술은 새로운 예술 형식을 창조하고자 했다. 기존의 전통적 소재와 역사적 주제를 다루면서 유럽 아방가르드 사조의 급진적 태도를 수용한 창의적 시도들이 전 예술 장르에 걸쳐 확산되었다. 다양한 시각과 열정을 지닌 화가들이 2차 대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폴란드 예술을 이끌어 오고 있다.
이들은 '길거리 예술'인 포스터를 단순히 선전이나 정보 전파의 도구로 취급하지 않고 지적이고 간결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높은 수준의 그래픽 디자인으로 끌어올렸다.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폴란드 포스터파'는 20세기 후반 폴란드 예술을 대표하는 중요한 성취 중 하나이다.
정말 기나긴 전시였다. 초반에는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열심히 들었지만, 후반부에 가서 체력적으로 너무 지쳐 꼼꼼히 보지 못했다. 그나마 전시 중간중간 의자가 있어 쉬어갈 수 있던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런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고도 볼 가치가 있는 전시회였다. 많은 작품들이 전시된 만큼 리뷰에서 소개하고 싶은 작품도 많았다 보니 설명이 길어졌다. 더욱 멋진 작품들이 많았으나 그것은 관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도록 하겠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기대했던 도자기 공예의 전시가 비중이 적게 다뤄졌다는 것이다. 동양적인 느낌과 서양적인 느낌이 함께 있는 도자기 공예를 보고싶었는데, 아트샵에서만 간단히 전시되어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회화 전시에서 흥미로운 작품이 많아 실망감이 싹 없어졌다. 쇼팽만을 중점으로 다룬 공간에서 쇼팽의 ‘마주르카’ 연주를 틀어준 것도 신선한 특징이었다. 천 년의 역사를 이렇게 몇 시간만에 파헤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꼭 관람해보길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같이 갔던 친구의 소감 카톡으로 리뷰를 마치겠다.
출처 및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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