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왔다. 후끈한 열기 속, 비에 젖은 도시의 변두리 골목까지 조목조목 보이는 여름의 매캐한 도시 감성, 또한 한 계절 앞지르는 인간의 감성을 따라 고독과 우수를 그리는 이 시기에 가장 적합한 감성이 있다면 필자는 강력히 '느와르'를 주장하고 싶다.
불어로 '검정, 밤'이라는 의미의 느와르는 도시의 암흑가, 갱들 간에 펄쳐지는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문화장르를 칭한다.우리는 이러한 장르가 지니는 특유의 분위기, 느와르적 감성을 알고있다. 밤의 도시, 모래먼지가 날리는 거리에서 풍겨지는 거칠은 이미지와 부패한 삶에서 풍겨나는 일그러진 쾌와 역동성. '밤'과 '갱'이 풍기는 오묘한 리듬과 유희는 보사노바와 라틴계 문학을 떠오르게 한다.
동시에 이와는 상반되는 '밤의 정수'로서의 느와르도 공존한다. 그것은 섬세히 박동해가는 고요이자 공기의 장막과 같은 이미지이다.
필자에게 이러한 두 가지의 인상을 심어준 작품들이 있다. 아직 느와르 문학, '대부'와 같은 고전영화에 순순히 접근하기엔 게으르고 철없는 필자의 감성은 이 대신 21세기 영화와 재패니메이션을 통해 충족되었다.
보사노바, 재즈의 거리를 환기하는 느와르 풍의 애니메이션 하면 대표적으로 '본즈'의 카우보이 비밥(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1998)일 것이다. 미래를 배경으로한 현상수배범을 잡는 카우보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의 압권은 역시 '음악'일 것이다. 각본가인 노부모토 케이코와 음악감독인 칸노 요코가 자아내는 웨스턴 느와르적 분위기는 작품의 선풍적 인기의 핵심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 본즈 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로서 자리매김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이후에 카우보이 비밥 제작진이 다시 뭉쳐 만든 '울프스 레인(오카무라 텐사이 감독,2003)'을 가장 좋아한다. 낙원을 찾아가는 늑대들의 이야기로서 문명의 쇠락기를 배경으로 한 허무주의와 유토피아, 낭만적 감성이 흐르는뉴에이지 분위기의 작품이다. 갱들의 이야기가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느와르적 분위기는 로드무비 속의 늑대들의 정체성, 또한 작품의 배경인 세계, 거리를 흐르는 분위기를 구성하고 있다. 작품의 세계관과 완벽히 조화를 이룰 뿐더러 이를 구성하는 핵심이 되는 것은 역시 칸노요코의 음악이다. 이야기의 서정성과 분위기의 무게로 인해 카우보이 비밥보다는 경쾌함과 팝적인 요소가 덜하고 좀 더 클래식적이다. 이로서 위의 역동적 감성과 고요의 감성을 아우르고 있다.
또한 울프스레인 속에 등장하는 세기말의 황폐화된 도시 속 경향들, 모티브들은 갱스터의 분위기와 접점을 이루고 있다. 하층민들의 가난한 거리와 환각상태에 빠진 귀족들의 향락문화는 마약에 병든 도시의 그늘이 극에 다른 상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요소들이 드러내는 느와르적 정체성은 무엇일까. 인간의 부패와 범죄가 전면으로 드러나는 행태, 극도의 타락과 뒤틀린 삶의 양식들, 인간 본연의 결핍이 만연히 드러난 상황에서 겹겹이 행해지는 암수들은 끝없이 속이고 숨기며 독점하는, 불평등한 구조를 생산한다.이러한 병든 사회로부터 마주하게 되는 감성적 양태, 허무주의는 우리가 느와르풍에 대하여 흔히 떠올리는 자기회한적, 우수에 한 인간의 모습을 구성한다.
이와 함께 느와르 장르가 담는 치밀한 현실의 양태들은 밤의 장막을 구성한다. 올해 본 J.C 챈더 감독의 '모스트 바이어런트(2014)'는 밤의 정수로서의 느와르 감성을 최고로 일깨워준 작품이다. 암흑가 보스의 딸과 결혼한 이주민 출신 석유업 사업가가 80년대 미국 사회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패권을 잡아가는 이야기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위의 감상적인 측면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다. 그렇기에 도덕적인 동시에 굉장히 비도덕적이라 할 수 있다. 도덕성의 추구하는 인물을 통해 매스컴을 통해 부풀려지는, 흔히 우리가 가지는 갱 사회, 암흑가의 이미지와는 다른 현실의 측면을 끄집어내면서도 결국 자본주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강력히 결착되버린 인간의 모순과 비정한 현실의 원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현실의 원리들, 즉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폭력성의 양태를 묘사함으로서 영화는 고요의 장막을 형성한다. 폭력은 고요하고 치밀하게 조여온다. 벨벳처럼 부드러워 보이나 언 숨처럼 차갑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는 시기. 아직은 무덥지 않은, 우중충한 날씨 아래서 느와르에 대한 향수를 마음껏 느껴보는 것도 방학을 색다르게 보내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