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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사랑은 가장 두려운 얼굴로 찾아온다. - 레위기 [영화]

정상성이라는 이름으로

by 노현정 에디터
2026.10.2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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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영화에서 두려움의 근원은 대개 일상적인 질서를 위협하는 외부의 존재로 등장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침입하고, 인물들은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거나 제거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러나 애드리안 키아렐라 감독의 〈레위기〉에서 공포의 근원은 조금 다르다. 이 영화에서 위협적인 존재는 낯선 얼굴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인물들이 느끼는 공포는 단순히 생존의 위협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사랑과 두려움이 분리될 수 없게 된 상황 자체와 자신들이 있는 익숙한 공간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되는 복합적인 모습으로 구현된다.


      호주의 보수적인 종교 공동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나임과 라이언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두 소년의 사랑은 나임이 라이언과 목사의 아들 헌터의 관계를 의심하면서 전환된다. 나임은 둘의 관계를 목사에게 폭로하고 라이언과 헌터는 동성애를 죄로 간주하는 공동체에 의해 이른바 ‘치유 의식’을 겪는다. 이후 두 소년 앞에는 서로의 모습을 한 위협적인 존재가 나타난다. 상대를 향한 사랑과 욕망이 억눌릴수록, 그들이 고립될수록 그 존재는 더욱 구체적인 모습으로 발현된다. 결국 헌터는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라이언 또한 나임의 얼굴을 한 존재를 만나며 미지의 공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도록 강요받은 인물들이 이제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형상을 한 존재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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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제목인 〈레위기〉는 이러한 설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구약성서의 레위기는 제의와 정결, 금기와 규범을 다룬다. 특히 동성 간 성행위를 금지하는 구절은 역사적으로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근거로 인용되어 왔다. 영화는 이 종교적 맥락을 배경으로 삼으며 전통적인 공포영화의 문법으로 옮겨온다. 특정한 성적 지향을 교정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공동체의 믿음이 인물에게 가하는 폭력은 초자연적인 위협의 형태로 확장된다. 영화가 묘사하는 공동체에서 구원은 개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가 정한 규범에 맞도록 개인을 교정시키는 과정에 가깝다. 타인의 고통은 그를 잘못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로 취급된다. 헌터의 가족과 나임의 어머니가 아들의 외침에도 결코 의식을 멈추지 않고 이후에도 방치하는 모습에서 그 잔인함을 보여준다. 영화 속 인물들을 위협하는 존재 이전에 소년들을 고립시키는 것들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다. 상대를 위한 일이라고 정당성을 얻고 그것이 한 공동체의 의식이자 절차가 되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공포의 원인을 다시 규정한다. 초자연적인 존재가 실재하는가 하는 문제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은 그 존재가 어떤 조건에서 출현하는가 하는 문제다. 두 소년을 위협하는 괴물은 독립적인 악이라기보다, 폭력적인 규범이 개인의 감정과 관계를 통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포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영화는 사회적 억압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남겨두지 않고, 인물들이 피하고 맞서야 하는 구체적인 위협으로 보여준다고 보인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존재라는 설정은 영화의 주제를 장르적 장치와 직접 연결한다. 얼굴만으로 상대의 정체를 판단할 수 없다면, 인물들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관계마저 의심해야 한다. 사랑은 상대에게 다가가는 감정인 동시에 그 상대를 피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이 모순은 영화의 제목이 가리키는 금기와도 연결된다. 금지된 감정을 없애려는 시도가 오히려 그 감정을 공포의 형태로 되돌려 놓기 때문이다. 나임과 라이언은 홀로 있을수록 그 존재가 다가오기에 누구도 자신을 보듬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결국 서로를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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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이러한 상징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는 영화가 공포를 구체화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사회적 문제를 괴물의 형상으로 옮기는 것은 관객이 폭력의 결과를 직관적으로 경험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복잡한 문제를 하나의 상징으로 단순화할 위험도 있다. 종교적 억압과 초자연적 저주가 밀접하게 연결될수록 인물의 감정과 관계가 유기적인 서사로 충분히 전개되는지도 중요해진다. 공포의 의미가 명확하다는 사실만으로 그 공포를 경험하는 인물까지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장르적 성취 역시 비슷한 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레위기〉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공포영화의 외형을 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메시지를 공포의 작동 원리와 결합한다. 인물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이 자신들의 감정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포는 외부의 적을 제거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인물들은 금기를 깨면서 서로를 찾게 된다. 비슷한 경험을 한 소녀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나임과 라이언은 직전에 경험한 충격적인 상황들로 하여금 더욱 가까워진다. 물론 이들이 왜 이렇게 서로를 갈구하는지. 의식을 치른 사제는 어떤 목적으로 등장했는지,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한 소녀들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맥락으로만 드러난다. 영화는 두 소년의 관계와 이들이 서로의 얼굴을 한 존재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는지를 좀 더 분명히 밝힌다.


      결국 〈레위기〉는 금기와 욕망의 대립이라는 거창한 주제 의식보다는 조금 더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들이 바라는 서로의 모습이 공포로 발현되면서 그 사랑이 너무나 명료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 속 종교 공동체가 전형적으로 폐쇄적인 모습을 띠고 있기에 소년들이 마을을 벗어나기 전만을 다룬다는 점에서 아쉽기도 하다. 익숙한 장소와 공포의 공간을 벗어난 이들이 어떻게 지내게 될지도 궁금하고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보여준 공포의 형태는 분명 번뜩인다. 구원이라는 말로 등장한 존재는 이들의 모순을 명확히 드러낸다. 타인을 구원하려는 행위가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서 시작한다면, 그 구원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레위기〉는 이 질문을 직접적인 논쟁 대신 장르적 이미지로 자리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세계에서, 괴물의 정체를 밝히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이를 두려워하게 되는 그 근원적 환경을 뒤집어 흔들어보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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