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에서 나보다 10살 많은 사수가 말했다. 이 회사에 다니면서 반려 질환 같은 게 있으면 좋다고. 여기는 연차를 쓰려면 사유란에 꼭 이유를 적어야 하는데, 그때 반려 질환이 좋은 핑계가 되어줄 거라는 꿀팁을 내게 넌지시 일러준 것이다. 나는 선배는 어떤 반려 질환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고, 선배는 웃으면서 두통이라 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내게도 반려 질환이 생길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이 예고장이었나.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나고 있다. 근 한 달간 잠을 잘 못 잤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아도 삐죽거리는 생각들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면서 잡생각들을 떨쳐내려 해봐도 어찌나 끈질기던지. 오늘 있던 일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다, 몇 년 전 일까지 끌어내 기어이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 식이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정말 그렇게 되는 것 같아 꾹 참아왔지만 아무래도 불면증인 것 같다.
잠을 못 자니까 사람이 예민해진다. 원래도 예민했지만... 꼭 내가 후진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평소 같으면 별생각 없이 넘겼을 일도 초월 해석을 더해 입술을 깨물고, 책상 밑으로 주먹을 부들부들 쥔다. 그러다 보면 혼자 진이 빠진다. 피부는 점점 푸석해지고 두통은 덤이다. 역시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예사말이 아닌 듯하다.
인터넷에 '불면증'이라는 세 글자를 친다. 첫 페이지부터 수많은 글이 쏟아진다. '역시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군'이라는 안심도 잠시, 기사를 읽다 무시무시한 이야기에 질려버려 이내 창을 닫는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검색한 건데, 괜히 없던 걱정까지 생긴 기분이다. 까만 배경 화면 위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얼굴이 비친다. 아무래도 최근 잠에 들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내야겠다.
왜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까? 짐작 가는 이유를 떠오르는 대로 뱉어보자면, 내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입주해 있기 때문일 테다. 생각 하나하나마다 월세를 받았다면 아마 서울에 집 한 채는 너끈히 샀을 것 같다. 이럴 거면 차라리 돈을 내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싶은 걸 참으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장면들을 천천히 따라가 보기로 한다.
생각의 실타래를 감아올리며 들여다본 고민의 기저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숨어 있었다.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듯한 업계 사정에 대한 걱정이라든지 (물론 생각해 보면 내가 발을 담은 이래로 한 번도 호황인 적이 없던 것 같지만), 그 속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동료들을 향한 부러움과 질투심이 있었고,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더불어 점점 홀쭉해지는 통장 잔고에 대한 걱정, 이에 파생되는 여러 고민이 엉겨 있었다.
이 중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있는 것들을 구분해 본다. 업계가 좋아질지, 동료의 성과,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내가 당장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기준에 맞춰 나눠 놓고 보니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압도적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을 향한 생각의 굴레가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현재에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
마지막 수업을 들은 지 2년이 꼬박 다 되어가는 요가원 선생님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은 내려놓고 지금 내 몸에 느껴지는 자극에 집중해 보라는 말. 물론 그 말을 들을 당시에도 실시간으로 불어가는 생각을 누르기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되려나. 점심으로 챙겨온 닭가슴살을 씹으면서 생각했다. 현재를 사는 건 뭘까? 산책길을 터덜터덜 걸으면서 생각했다. 현재를 사는 건 뭘까? 자리로 돌아와 머리를 긁다가도, 내려받은 커피의 크레마를 유심히 바라보다가도 생각했다. 현재를 사는 건 뭘까? 하루 종일 이어진 질문은 이불을 덮으면서도 계속됐다.
일상에서 이 물음을 스스로 던질 때마다 나는 쉬이 답할 수 없었다. 그냥 느껴질 뿐이었다. 닭가슴살을 씹고 있는 나, 산책길을 걷고 있는 나, 가려웠던 머리가 시원해진 나, 연갈색의 크레마를 보고 있는 나, 침대에 누워 있는 나...
어쩌면 현재를 산다는 건 무언가를 완벽히 이해하려 하거나 머릿속을 휴지통처럼 깨끗하게 비우는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수많은 고민 중 여전히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더라도, 그저 지금 내 앞에 놓인 상황을 바라보는 일. 그러려는 노력이 현재를 사는 가장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양을 세다 잠들어버리는 아이처럼, 어제의 나는 질문을 떠올리다 평소보다 일찍 잠에 들었다. 오늘 밤도, 내일 밤도 같은 질문을 떠올리다 보면 또 스르륵 잠에 들려나. 그런 날이 이어지다 보면, 잠들지 못하던 나의 밤도 조금씩 짧아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