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퇴근길, 버스를 타러 가면서 수국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옆건물 벽에 붙은 화단에 수국이 두 그루. 초여름이 시작되면 얌전히 화려하게 꽃을 피워서 꽃망울이 보이기 시작하면 지켜보게 된다. 작년에는 무더위에 만개하기도 전에 말라버려서 아쉬움이 컸다. 올해는 잘 자라겠지 지켜보고 있었는데, 세상에 하필이면 올해 이 시점이 화단 정리 타이밍이었다.
집 근처 큰 길가의 나무가 네모네모로 잘려있어서 이유를 찾아보니 여름이 시작되면 나무가 갑자기 쑥 자라서 문제가 된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 가지치기를 한다는 생활정보를 습득했지만 그건 그거고 화단은 화단 아닌가 했다. 며칠 뒤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데 가지치기 안내가 있었다. AI한테 물어보니까 폭우 대비도 하고 병충해 방지도 해야한단다. 사실상 혹서기 대비였다.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민첩하게 산책 약속을 잡았다. 남의 동네를 많이 걸어다니는 일정이었는데 길을 잃어가며 돌아다녔더니 돌아갈 때쯤 둘 다 땀이 흥건했다. 그래도 하늘이 맑고 벌레가 없고 사람도 덜해서 만족스러운 긴 산책이 되었다. 가을이 되기 전까지는 야외를 걸어다닐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고 여러 산책길이 봉인되었다.
집에서는 에어컨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벌써부터 냉면에서 빙수에 이르기까지 차가운 음식을 다양하게 먹고 있다. 냉동실에 얼음을 얼리고 잘 안 먹는 아이스크림을 채워넣어두었고 음료수가 늘어났다. 얇은 여름 잠옷을 꺼냈고 새 여름 옷도 장만했다. 본격적인 여름을 준비하면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여름이 유난히 어려웠다. 뭐 하는 것도 없이 시간이 잘 가는 것 같으면서도 여름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더위때문인지 의욕이 사라지고 모든 것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가만히만 있어도 지쳐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거리를 두고 보니 여름마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봄이나 가을을 타는 것처럼 여름을 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날이 흐려지는 가을 겨울의 계절성 우울증을 떠올리기 쉬운데 여름에도 계절성 우울증이 발생한다고 한다. 습해지는 날씨와 기압 변동으로 피로감과 불안초조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더불어 체온조절 문제로 컨디션이 저하될 수 있다는데 이리보고 저리봐도 나의 이야기였다.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몸도 안 좋아지는 건지, 몸이 안 좋아서 정신도 영향을 받는 건지 궁금했는데 그냥 둘 다 문제였다. 정답은 아니지만 문제의 원인을 대충 알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구나. 알고나니 후련해졌다. 답답하게 물길 속을 헤맬 뻔 했는데 명쾌해졌다.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사실 대책이랄 것도 없다. 해가 길어지고 날씨가 더워지고 습도가 오르고 장마철 기압은 누가 조정할 수도 없고 내가 피할수도 없는 영역이다.시원하고 쾌적하게 있으면서 잘 쉬고 잘 먹고 잘 자고 적당히 운동하라는 어디에나 통하는 건강한 생활방식이 권장된다. 역시 어디서든 뭐든 기본적인 게 중요했다.
피할 수 없다고 즐길 생각은 없고 희석시킬 생각만 있다.
여름의 것으로 여름에 대응해내는 게 가능할 지 모르겠다만 이번 여름의 목표는 그러하다. 여름으로 여름 희석하기 대모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