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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쯤 과천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모네 그림을 봤다. 아니, 단순히 본 게 아니라 그 그림을 보러 갔었다.

 

수련은 한 벽면을 통째로 비운 채 딱 그 그림 한 점만 걸려 있다. 모네가 그린 빛에 집중하라는 의도인지 전시장은 최대한 조도를 낮추고 몇 개의 조명만으로 그림을 비춘다. 사실 워낙 유명한 그림들이라 직접 보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사진으로도 작품을 아주 선명하게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실제 그림 앞에 서면 감동은 전혀 다르다. 붓질의 방향과 물감의 두께,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표면의 질감이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단순히 흰색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빛의 굴곡이 보인다. 빛이 캔버스 위에 얹혀 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다.

 

그림에 빛을 가둘 수 있을 만큼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 작품만 본다면 나는 모네를 그렇게 상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 책이 보여주는 모네의 삶은 조금 다르다. 그의 인생은 화려한 성공담보다는 가난의 연작에 가까웠다.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지만 화단의 권위를 상징하던 살롱전과 끊임없이 갈등했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반복했다. 인정받고 싶었지만 타협하고 싶지는 않았고, 살아야 했지만 그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모네는 참 인복이 좋은 사람이었던 거 같다. 친구가 후원자가 되어주기도 했고, 르누아르와 마네 같은 동료들은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뮤즈이자 아내였던 카미유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그의 곁을 지켰다. 재능을 알아본 스승과 작품을 믿어준 수집가들까지. 그의 인생은 여러 번 무너질 듯했지만 이상하리만큼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사주가 궁금해질 정도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네는 평생 빛을 그렸지만 정작 그의 삶을 비춘 것은 주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재능을 알아봐 준 스승, 함께 견뎌 준 동료, 끝까지 작품을 믿어준 후원자들. 그들은 모네가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 또 다른 빛이었다.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 세계를 본다는 사실도 신기하다. 책에 따르면 모네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 사람들에게 안개는 그저 옷을 더럽히고 기침을 유발하는 성가신 존재에 가까웠다. 하지만 모네가 안개를 화폭에 담자 사람들은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안개가 바뀐 것이 아니라 안개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것이다.

 

어쩌면 예술이 하는 일도 그것일지 모른다. 세상에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던 것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일.

 

사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네가 살았던 시대의 빛을 볼 수 없다. 19세기 프랑스의 하늘이 어떤 색이었는지, 지베르니의 연못에 비친 오후의 햇살이 어떤 온도를 가졌는지 정확히 알 방법은 없다. 설령 그가 서 있던 장소를 찾아간다 해도 같은 빛을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네의 빛은 애초에 그의 그림 속에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내가 실제의 빛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결핍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모네가 화폭에 남긴 찰나는 아름다웠다.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가 본 세계의 일부를 함께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을 본다. 정확한 기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을 빌려 세계를 다시 보기 위해서. 모네는 빛을 그렸지만 사실은 빛을 바라보는 방식을 그렸다고 봐도 좋겠다. 런던의 안개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연못 위에 부서지는 햇살이 하나의 풍경을 넘어 하나의 감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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