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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으로부터 출발해 지구에 도달한 빛이 자아내는 빛깔은 총천연색으로 변하고 사라진다. 아주 당연한 이 사실 하나가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사람을 가장 헷갈리고 애매하게 만든다. 머리로 인식한 사물의 색깔과 눈 앞에 보이는 색이 다를 때 캔버스 위에는 그 괴리감만큼의 차이가 발생한다. 예를 들자면 오후에 바라본 잔디는 노을빛을 받아 주황빛을 띄는 초록이다. 명료하게 말하자면 초록색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잔디는 초록색’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색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잔디의 색을 칠하게 된다. 그 결과 마주한 그림은 당연히 생각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 된다.

 

이 현상을 눈으로 이해하고 손으로 그려 내는데 일생을 바친 작가가 바로 클로드 모네다. 그가 ‘빛의 작가’라고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모네가 그린 작품을 보면 정확하게 색이 표현되었다기보다, 일상의 순간 중 한 장면을 되돌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 위로 비추는 윤슬,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과 햇살이 캔버스 위에 그대로 옮겨진 듯 묘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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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순간을 포착해 빛이 만들어 내는 색채에 집중한 화풍을 ‘인상주의’라고 부른다. ‘인상주의’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계기도 이 모네의 그림을 본 비평가의 한마디였다. 1874년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전시회에서 본 비평가 루이 브루아는 ‘벽지보다 못한 미완성작’이라는 혹평을 남긴다. ‘스케치에 불과할 뿐 단순히 인상(Impression)에 불과하다’는 그의 말은 역설적이게도 모네와 이후 등장하는 인상파들을 일컫는 말이 된다. 모네는 그만큼 이 ‘인상주의’라는 화풍의 선두에서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해 낸 선구자였다.

 

그런 모네의 일생은 빛으로 가득하다. 유년기 때부터 모네는 그림에 재능을 드러냈는데, 18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빛을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모네의 캔버스 위에는 다양한 빛깔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순간 타오르는 햇빛과 흩날리는 바람, 그 들판 위의 드레스를 모네는 두 눈으로 담아낸 그대로 캔버스에 옮겼다. 명료하지 않은 터치가 순간을 더욱 선명하게 담아냈고, 그림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었다.

 

다만 그의 별명처럼 모네의 일생이 마냥 빛으로 가득한 건 아니었다. 빛이 있는 곳에는 필히 그림자가 존재한다.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결혼 생활로 인해 아이도 보지 못하며 살아야 했던 때가 있었고, 그의 그림도 언제나 순항을 이루며 팔려나가진 않았다. 수많은 굴곡 속에서 모네는 더 많은 빛의 모습을 포착하고자 했고, 유럽의 여러 곳을 전전하며 수만 가지의 풍경을 담아냈다. 어떤 어두움이 드리워도 모네는 포기할 줄을 몰랐다. 오히려 더욱 불타오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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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네는 아르장퇴유와 생타드레스를 떠나 런던에서는 안개를, 네덜란드의 잔담에서는 색채를 탐구했다. 그야말로 빛이 자아내는 모든 현실과 환상에 푹 빠진 채 모네는 붓질을 멈추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장면을 잃지 않기 위해 캔버스를 땅에 묻고, 배에 태우는 열정을 보였다. 그 열정 끝에서 나타난 그림이 어찌 찬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집념으로 모네는 자연뿐만 아니라 산업화의 순간까지도 포착해 그려냈다. 격동하는 시대를 나타내는 지점으로 모네는 생라자르역을 선택했다. 그곳에서 모네는 기차의 증기마저 캔버스에 붙잡아내며 인상파로서 인간이 만들어 낸 찰나의 박동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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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네의 캔버스 바깥에 수많은 사랑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뮤즈였던 카미유부터 노년의 버팀목이었던 알리사, 그리고 그 가족들과 동료들이 없었다면 모네는 이 모든 걸작을 이루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사랑은 가족과의 슬픈 이별 속에서도 몇 번이나 굳건하게 모네를 일어서게 했다. 카미유를 보낸 후에는 알리사의 사랑이, 아들 장을 보낸 후에는 며느리 블랑슈의 헌신이 있었다. 더불어 말년이 되어 백내장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도 모네는 이 사랑을 기억하며 다시 일어나 붓을 잡았고, 캔버스 앞에 앉았다. 모네는 빛을 사랑했고, 빛 속에서 사랑을 보았고, 사랑에서 다시 빛을 보고자 했다. 그 결과는 지베르니의 정원에서 그린 그림과 ‘수련’ 연작으로 나타났고, 이 세상에 더없이 아름다운 걸작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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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모네의 작품을 본 모두가 그를 ‘빛의 작가’라고 칭한다. 그러나 그의 생애와 여정을 함께 해보니, 그가 가진 ‘빛의 작가’라는 이름이 단순히 빛을 잘 표현해서 붙여진 이름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가진 찬란함과 어두움, 연속되는 순간을 붙잡고자 일생을 바쳐 노력했던 헌신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 함축되어 있는 듯 했다. 빛이 단순히 하나의 빛깔만을 가지고 있지 않듯이, 그 빛을 탐구한 모네의 일생도 그러했던 것이다. ‘빛의 작가’라는 단어에 프리즘을 대면 얼마나 많은 빛깔이 비쳐 보일까. 그 속에는 수없이 이어진 집념과 끈기, 인내와 노력이 있었다. 모네를 다른 말로 하자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의지의 작가’다.


이 순간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장면을 띄고 있는가. 어떤 빛을 받아 어떻게 빛나고 있는가.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과 숲, 나무와 들판. 그리고 나의 방과 얼굴은 어떤 빛을 띄고 있나. 모네의 작품은 같은 일상일지라도 그 속의 한순간을 심도 있게 탐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일상이 평범하고 지루해 보인다면 모네의 시선을 빌려 순간을 꼼꼼히 붙잡아 보는 건 어떨까. 미처 알아채지 못한 새로운 빛깔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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