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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 대한 관점의 차이 : 국립민속박물관의 <출산, 모두의 잔치>, 아마도예술공간의 <마더링 플루이드>


 

전시는 소장품의 진열을 넘어 사회적 관점을 생산하는 권력의 장치로 기능한다. 몇 달 전 직접 관람했던 전시들은 이러한 사실을 선명하게 인식하게 만든 계기였다. 주제나 작품의 선정, 공간의 흐름 등이 관람객의 시선과 해석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전시는 단순한 감상의 장에 머무르지 않았다. 이에 실제 전시 사례와 근대 박물관의 역사를 통해 전시의 사회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탐구해 보려 한다.

 

올해 5월까지 기획되었던 국립민속박물관의 <출산, 모두의 잔치>와 3월까지 선보였던 아마도예술공간의 <마더링 플루이드>는 공통적으로 출산을 소재로 삼았으나 그것을 드러내는 관점에서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잔치’라고 표현한 전시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임신과 출산을 축복과 기쁨의 서사로 제시한다. 전시는 한국의 출산 역사를 조명하며, 전통적인 민간요법에서 서구식 산과 의료가 도입되는 과정까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이전보다 출산이 과학적이고 체계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전시의 종막에서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축하하는 여러 방식을 소개하며, 출산의 의미는 자연스럽게 ‘탄생의 기쁨’으로 수렴된다. 이러한 관점은 저출산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 장려 정책과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출산을 아이의 탄생 중심으로 바라보는 평면적 시선은 산모의 몸과 경험을 주변부로 밀려나게 만든다. 출산은 단지 ‘아이의 탄생’이 아니라 ‘부모의 탄생’이기도 하다.

 

반면, 아마도예술공간의 <마더링 플루이드>는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에서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선을 거두어 엄마의 몸과 내면으로 향하게 만든다. 이 전시에서 엄마는 출산 이후 망가진 몸을 이끌고 빠르게 직장으로 복귀해야 하는 사람으로, 고된 육아 노동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또한 끊임없이 흔들리는 불안 속에서 마치 하늘에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듯한 감각을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로 그려진다. 즉, 이 전시는 출산의 고통과 더불어 때때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부모의 연약함까지 함께 조명한다. 따라서 관람객이 어떤 전시를 보느냐에 따라 자연스레 출산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차이가 생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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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역사 : 시선의 정치학


 

그러나 박물관의 역사를 떠올려 본다면 박물관이 관람객의 인식을 교묘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특히 제국주의 시대의 서구 박물관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피지배 국가의 시민들을 교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곤 했다.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현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아시아 컬렉션은 비아시아 지역의 컬렉션과 확실히 분리된 공간에 전시되어 있었다. 더욱이 유럽 미술의 조각과 회화 장르는 별도로 분류한 반면, 아시아 미술의 조각과 회화를 장식 미술 안에 포함시킨 것은 아시아 미술품의 미학적 가치보다는 ‘민족지학’적 지위를 확인하는 것이었다.[1] 이러한 의도는 식민지인 인도를 포함한 잠재적 식민지로서의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지배 권력과 영향력을 얻고자 한 당대 영국의 국가적 이상과 맞닿아 있었다.[2] 한편, 한국의 근대 박물관 역시 제국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1923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전시에서는 중국 유물이 19%, 조선시대 유물은 4.5%, 나머지 선사·삼국·고려시대 유물은 76%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이것에 대해 최석영은 전시 유물의 비율 차이에 대한 몇 가지 시사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로, 중국 유물의 비율이 19%를 차지하는 것은 한국 문화의 형성 과정에서 타율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 대한 역사적 명분을 보여주려 하였다. 둘째로, 조선시대 유물의 비율이 낮은 것은 그 시대의 문화적 빈약성을 드러냄으로써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작위적인 논리를 유도하는 것이다. 셋째로, 전체 유물 가운데 삼국시대 관련 유물의 비율이 높은 것은 고대의 한일 문화 교류 역사를 재현함으로써, 당시의 지배-피지배 관계의 부당성에 대한 인식을 의도적으로 둔감하게 만들려고 했다.[3]


흔히 박물관은 우리 역사의 진실을 보여준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과 ‘진실’을 구분해야 한다. 박물관의 전시가 누군가의 관점 하에 재편집된 사실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실제로 같은 출산이라는 소재조차 전시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구성될 수 있었고, 근대 박물관의 전시가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깊이 연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관람객은 전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어떤 시선과 의도가 작동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전시를 본다는 것은 단지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구성하고 권력을 행사하는지를 읽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1] 강은주,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의 아시아 컬렉션(1851년~1899년) 연구」,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Vol.29, 2008, p.15

[2] Ibid., p.16

[3] 최석영,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출현과 ‘식민지적 기획’」, 호서사학 제27집, 1999,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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