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관객은 어떻게 연극을 관람할까. 대사를 들을 수 없는 관객은 어떻게 대사를 파악할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관객도 있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연극 <히스토리보이즈>를 보러 간 날, 흰 지팡이를 짚으며 동행인과 함께 객석에 들어서는 이를 보고 나서야 그런 생각을 했다. 그가 이 연극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을까. 눈이 보이는 나도 열두 명의 인물을 따라가기 벅찬데, 목소리만으로 이들을 구분할 수 있을까. 대사가 없이 행동 연기만 이어질 때는 어떻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까. 3시간이 넘어가는 이 긴 연극을 그는 어떻게 감상했을까. 연극을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에 모두를 위해 만든 ‘접근성 높은 연극’이라는 <해리엇>의 홍보문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접근성 : 사용자의 신체적 특성이나, 지역, 나이, 지식수준, 기술, 체험과 같은 제한 사항을 고려하여 가능한 한 많은 사용자가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 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하고 이를 평가 할 때 쓰이는 말이다.

 

접근성이 높다는 것은 이러한 제한 사항을 가진 사용자도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며 접근성이 낮다는 것은 어떠한 제한 때문에 사용하기 불편하거나 사용할 수 없을 때를 말한다. (출처 – 위키피디아)

 

 

연극 해리엇 포스터.jpg

 

 

한윤섭 작가의 장편 동화 <해리엇>으로 만든 이 연극은 ‘접근성 높은 연극’임을 내세우고 있다.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도 함께 관람할 수 있는 연극은 어떤 면이 다를까. 정말 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동행인의 부연 설명 없이 관람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강동아트센터를 찾았다.


그렇게 도착한 공연장 로비에는 무대를 본따 만든 미니어처와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공연을 보기 전에 미리 무대를 파악할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원한다면 사전에 무대로 올라가 손으로 만져보는 ‘터치 투어’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다짜고짜 소리로만 연극을 접하는 것보다 어떤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지를 미리 알면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객석에 앉아 있으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안내 멘트가 방송됐다.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주시고, 공연 중 비상 상황에 대비해 앉아계신 객석에서 가까운 비상구를 확인해주세요.” 비상구 앞에 선 어셔가 외친다. “왼쪽 비상구입니다!” 그러곤 짝! 짝! 짝! 하고 손뼉을 친다. “오른쪽 비상구입니다!” 또 다른 어셔도 큰 소리로 말하고 손뼉을 친다. 암전이 되고, 두 명의 배우가 무대 위에 나타난다.


“드림 동물원에 오신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희는 드림 동물원의 안내원입니다. 그러다 공연이 시작되면 사육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동물이 되기도 합니다. 바로 일인다역의 그림자 소리 역할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말과 수어를 번갈아 가며 소통합니다. 제가 말하면 제 옆에서 수어통역을 하고”

 

“제가 말하면 제 옆에서 수어통역을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해리엇의 무대, 드림 동물원을 소개합니다.”


두 배우는 무대가 어떻게 생겼는지, 연주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주인공인 해리엇의 우리는 어느 쪽에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렇게 이야기가 펼쳐질 무대를 모두 안내한 다음 연극이 시작된다.

 

 

연극 해리엇 공연 장면.jpg

 

 

갈라파고스에서 잡혀 와 175살이 되도록 동물원에서 살아온 거북 해리엇. 동물원의 동물들은 노쇠해진 해리엇이 죽기 전 고향에 갈 수 있도록 함께 탈출해 바다로 향한다. 이 이야기를 눈이 보이지 않는 관객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리엇의 ‘마음의 소리’를 담당하는 배우가 마치 동화를 읽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상황을 설명한다.


“찰리의 열쇠가 나를 바다로 데려가고 있어. 올드가 나를 지키고, 스미스가 나를 뒤따르고 있어. 어둠 속 산길이 이어지고, 머리 위로 자동차의 불빛이 스쳐 지나가. 친구들의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어.”

 

배우들의 옆에 선 ‘그림자 소리 배우’는 수어로 대사를 전한다. 배우와 같은 호흡으로 표정 짓고 몸짓하기에 생각보다 이질감이 없다.


일반적으로 음성해설과 자막은 비장애인의 관람과 분리되어 이루어진다. 시각장애인 관객은 수신기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고 음성해설을 하는 해설사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막을 띄우는 전광판도 무대 중앙이 아닌 무대 바깥에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해리엇>은 동물원의 출입문이자 간판인 무대 중앙의 아치에 자막을 띄워 객석 어디에서든 자막을 보기 쉽게 만들었다. 음성해설도 모든 관객이 들을 수 있게 했다. 다 만들어진 극에 음성해설과 자막을 얹는 게 아니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조건’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바다거북 해리엇이 친구들의 도움으로 바다에 도착하고 연극이 끝나자, 관객들은 로비로 나갔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해리엇의 걸음을 따라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로비에 전시된 무대 미니어처와 의상, 소품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이가 많아도 적어도, 장애가 있어도 없어도 모두 함께 관람할 수 있는 따스한 연극이었다.


관객 중에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 사실을 어릴 때부터 인지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환경을 만들어갈까. 장애인에게, 심지어 어린아이에게도 문턱이 높은 공연이 많다. 더 많은 관객을 맞이하기 위해 공연장의 문턱은 낮아져야 한다.

 

*아래 영상은 연극 <해리엇>의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목소리와 생김새, 의상, 소품, 무대공간의 정보를 안내하는 사전 음성해설 영상이다. 공연장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 여기까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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