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 대한 첫인상은, 그리고 당시의 내가 느낀 것은 “이 도시는 너무나 자유롭다”라는 것이었다. 오후가 되자 거리에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그들이 쓰레기통 위에 잠시 놓아둔 와인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 장난감 같은 성인용품점들과 거리에 걸린 무지개 깃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많은 사람과 손을 오붓하게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들. 쉽게 지지 않는 태양은 밤 8시까지 환하게 빛났고, 식당에서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내가 바르셀로나에 가서 느낀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실히 알록달록한 도시 같았다.
바르셀로나에 오면 꼭 가야 하는 곳이 있다. 영원히 완공되지 않을 것만 같은 건축물, 144년에 걸쳐 여전히 지어지고 있는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바르셀로나의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세대를 거듭하며 높아지고 화려해지며 아름다워지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기저, 그 토대에는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60622_205043244.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6/20260622222259_utiuhieq.jpg)
처음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본 것은 지나치듯 외관을 구경했던 때였다. 워낙 매체에 많이 소개되었던 터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성당이 거기서 거기겠지. 종교에 얽힌 인간의 창작물뿐이라고만 생각했을 때였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는 그 에스컬레이터에서 말문이 막힐 정도로 감탄했다. 크레인이 이곳저곳에서 공사를 지속하고, 군데군데에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런 흠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그렇게 성당의 외관을 빙 둘러 구경하다 보니, 안으로 들어가는 일부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내부를 보려면 별도의 표가 필요했고, 이미 매진된 지 오래였다. 성당의 안쪽을 보기 위해 기웃거려도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봤다는 기쁨보다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몰려왔고, 곧바로 취소 표를 구하는 방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날 밤, 겨우 취소된 표를 구할 수 있었는데 그 순간의 짜릿함이야말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렇게 힘겹게 들어간 성당의 내부는 정말이지 너무 황홀했다. 가끔 글을 읽다 보면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본 나머지, 눈이 멀 것 같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가. 그 문장이 가장 걸맞은 곳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직도 그 감동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것은 본 적이 없다. 말로 아무리 표현해도 제대로 된 형용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감정을 가지고 살다 보니, 다시 한번 성당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좋은 것을 보면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는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부모님과 같이 여행하며 보여드리고 싶은 장소 중 1순위였다. 그 아름다운 곳을 경험하기 전에, 미리 성당과 가우디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그의 창시자, 안토니 가우디에 대해 가장 자세하게 서술하는 설명서이다.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의 서문에 따르면, 안토미 가우디는 유럽 문화계의 위대한 천재 중 한 명으로 돌에 생명을 불어넣어 말하게 하는, 상징의 이념을 구현한 건축가이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을 연상시키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그리스도교적 바탕으로 지어졌으나, 그 건축 양식에는 자연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지어지게 된 과거의 흐름 속에서 가우디의 상징성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상황, 그리고 그가 가진 가톨릭 종교성에 대한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목표 속에서 이 책은 가우디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매체라고 볼 수 있다.
가우디는 인류를 위해 보편적인 교회를 만들고자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들어가게 되면, 온몸으로 영성에 대한 기운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천주교가 아닌 사람도, 카탈루냐인이 아닌 사람도, 그 외의 특정 범주에 속하는 모든 지구의 사람을 양팔 뻗어 안아주고자 하는 온화함이 느껴진다. 탄생의 파사드를 지나쳐온 사람들은 건물 자체의 웅장함을 느끼는 동시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햇살처럼 드리우며 쏟아져 내리는 채광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된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교회, 모두가 똑같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교회가 되고자 하는 안토니 가우디의 생각은 아래와 같이 서술된다.
‘레우스 원고’라고 불리는 가장 긴 문서는 바르셀로나의 역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건축가 학위를 취득하자마자 그는 건축가로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 원고는 장식에 대한 광범위한 생각을 적은 글이며, 시상을 떠올리거나 무늬를 만드는 대상이나 주제의 표현으로 장식을 이해한다. 다시 말해, 순수 조형 예술을 넘어 상징성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이 원고의 주된 주제는 ‘위대하고 훌륭한 교회’는 어떻게 되어야 하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이다. 가우디는 이것이 건축가의 이상이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 ‘레우스 원고’에서 가우디는 위대하고 훌륭한 교회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을 제시하는데, 이 성당은 설계와 시공의 통일성을 갖춰야 하며, “선의 체계와 지배적 차원”을 확립해야 한다. ... 요약하자면, “우리의 존재 방식에 바탕을 둔 장식을 만들어야 하고, 그 장식은 배운 사람이건 그렇지 못한 사람이건 모두가 똑같이 흥미를 느껴야 한다”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진정으로 카탈루냐 사람들의 행동과 존재 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곳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매력적이다. 배운 사람이건, 무지한 사람이건, 먼 곳에서 온 사람이건 가까운 곳에서 온 사람이건, 모두가 똑같다. 가우디는 인류를 위해 위대하고 훌륭하며 보편적인 교회를 만들고자 했다.
- 53p.
온 도시를 포용하려는 듯 뵈는 열린 대성당
책을 읽다 보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글귀가 있다. 바로 평화와 포용과도 같은 단어들이다.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상징하는 여러 조형물을 통해 인류의 구원을 표현하고자 하는 안토니 가우디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교회를 지어 그가 가진 뜻을 이루어 내고자 했다.
마라갈은 아마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영적 차원을 가장 잘 해석한 사람일 것이며, 성당을 건축한 안토니 가우디를 바르셀로나에서 새롭게 태동하고 있는 현실을 가능하게 만든 존재로 평가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으로 >는 이렇게 시작한다. “저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는 놀랍고 경이로운 일들이 일어난다. 이미 기적과도 같은 그 돌들의 보호 아래 새로운 세계, 즉 평화의 세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세계는 우리의 도시를 바꿀 것이며, ‘마을, 바다, 산도 끝없는 사람의 열망으로 바꿀 것이다.” 이 세계에는 보잘것없는 이들, 즉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벽돌공과 석공들과 같은 노동자들이 함께 살아간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온 도시를 포용하려는 듯 뵈는 열린 대성당”과 같으며, 그 성당으로 다가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끌리게 된다. 그것은 “그 포옹의 따스한 기운을 느끼기” 때문이다.
- 208p.
노동자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
성당의 한쪽에는 성당을 짓던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의 부지가 남겨져 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듣던 중, 구석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성당 안의 학교라니. 지금의 관점에서는 새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19세기였던 그 당시 노동자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건설한 것은 굉장히 진보적인 취지였다. 길어지는 공사 기간동안 노동자의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건물을 세우고, 바르셀로나의 미래를 이룰 개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가우디는 즉각적으로 비극의 주간에 반응했다. 1909년 11월 15일, 바르셀로나 주교 조안-조세프 라과르다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학교 단지를 개교했는데, 이 단지는 성당 공사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의 자녀들과 인근 노동자 동네에 살던 가정의 아이들이 다니도록 만든 것이었자. 조안 베르고스가 강조하듯이, 가우디는 교육과 문화, 예술, 그리고 말할 필요도 없이 정당한 임금을 통해 개인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상을 충실히 따라, 가우디는 불과 석달 반 만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부속 학교 건물을 설계하고 만들었다.
- 214p.
최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완공을 앞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 년이 넘도록 완공되지 않았던 성당이 드디어 의도했던 모습을 완벽하게 갖춘다고 생각하니 그 미래가 설레기도 하고, 이제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그 수식어가 없어진다고 나름 섭섭하기도 하다. 성당이 완공되면 더는 현재진행형이던 그 상태를 볼 수 없다. 일종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 셈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완공이 임박한 순간을 더 늦기 전에 즐기고 싶다면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을 펼쳐 드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