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많은 협곡을 돌아
저 많은 태풍을 뚫고 집에 돌아와
겨우 잠이 든 시인이
이 세계가 멸망의 긴 길을 나설 때
마지막 연설을 인류에게 했으면 했어
인류!
사랑해
울지 마! 하고
따뜻한 이마를 가진 계절을 한 번도 겪은 적 없었던 별처럼
나는 아직도 안개처럼 뜨건하지만 속은 차디찬 발을 하고 있는 당신에게 그냥 말해보는 거야
— 허수경, 「삶이 죽음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때처럼」 부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마지막은 늘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게 뜬금없는 이별이거나, 미루고 미뤄왔던 안녕이거나, 잠시 잠깐 안녕이지만 영영 이 순간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 앞에다 대고 해야 하는 작별 인사든간에. 허수경 시인의 유고 시집인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역시 그렇게 왔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아직 고민 중인 채로 그 앞에.
최근 한 웹 예능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걸 따라 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봤다.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사소한 행동을 내 일상에서 똑같이 따라 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뜨거운 공깃밥을 뒤집어 먹는다거나, 손가락에 있는 점을 따라 하기 위해 펜으로 점을 찍고 다니거나 하는 부류의. 그건 사실 내게도 있어 심각한 수준의 것인데, 어느 수준이냐 하면 늘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받곤 하는 내 글씨체는 초등학교 때 가장 좋아하던 친구의 것을 따라 하다가 생겨난 것이다. 왜 그렇게 좋아하는 게 생기면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허수경 시인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좋아하는 시인이 사랑하는 시인.’ 하릴없는 밤마다 좋아하는 시인의 발자취를 좇았고, 그것마저 부족하면 그가 좇던 시인의 존재까지 좇게 됐다. 그렇게 허수경 시인의 빨간 시집(『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에 도착했다. “인류”에게 “사랑”한다고, “울지 마!”하고 “마지막 연설을 했으면 했다”고 말했던 시인에게.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은 허수경 시인이 작고한 지 8년이 되는 그의 생일, 시인이 생전 정리한 시를 정리해 출간한 그의 마지막 시집이다. 시인의 말로는 제15회 이육사문학상의 수상소감이기도 한 그의 마지막 말을 차용했다. “...즐거움 속에서 벗들을 만나고 시를 나누었습니다.//”다시 태어나도 시를 쓸 것인가?”//이 모든 시간을 다 합하여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예!”//하고 저는 답할 것입니다.”
모르겠다. 평소에 하던 것처럼 내 맘대로 시의 세계를 휘젓고 쉽게 판단하고 섣불리 뱉어버리고 싶은데, 막상 시를 읽고 쓰자니 하나의 얼굴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시인의 프로필 속 마주했던 아주 작은 네모 속 웃던 얼굴을. 누군가가 사랑했고 그 사랑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 사람을 다시 또 사랑하게 될 이 세계를, 시인은 필히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직조한 세계는 숨기는 것 하나 없다.
(...)
비는 왔다
이 전쟁의 도시에서 비라고 여긴 것은
비처럼 내리는 총알이었다
비처럼 내리는 총알을 맞으며
사과를 찾을 일이 아니었다, 고
불 속에서 너는 속삭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빗속에서 사과를 찾았다
사과 찾기를 끝낼 사과 한 알만을
그 붉은 열매의 눈물을 찾았다
늦었다, 우리들은 너무 오래
인간이라는 직립 악몽 속에 있었다
— 허수경, 「사과는 떨어지고」 부분,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사람들과 화자는 “사과”를 찾기 위해 “전쟁이 벌어지는 도시”까지 도달했다. 그 도시에서 내리는 비는 비가 아닌 “총알”이었다. 여기서 사과는 사람들이 갈망하고 찾고자 하는 것, 어떤 물질이자 희망, 그 자체로 욕망이 되고 다시 희생자가 되는 것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러니 사과를 손에 쥔 인간이더라도 “늦었다”고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늘 그래왔듯 시인은 시를 통해 세계를 말한다. 언젠가 발표한 산문에서 “내 안에 든 수많은 나와 타자, 다양한 시간과 공간, 그 안에서 정의되지 못하는 ‘인간의 시간’을 보고 싶었다. 시의 사회적인 역할이 있다면 그즈음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 시가 한 인간을 자연으로 되돌려놓을 수는 없겠지만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시간을 함께 견뎌내야 하지 않겠는가”((「시인이라는 고아」))라고 말했던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사막 위에서 죽은 아기 코끼리를 마주한 인간과 죽은 아기 인간을 마주한 코끼리의 이야기를 담은 「나의 코끼리 꿈과 코끼리의 내 꿈」에서, “이 꿈을 꾸고 난 뒤 거의 일 년이 지나서 이런 꿈을 꾸었다. 나의 꿈이 아니라 코끼리의 꿈이었다 내가 꿈속에서 코끼리였다는 것이 아니라 내 꿈속에서 코끼리가 꿈을 꾸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그 순간, 나는 내가 아니라 코끼리였을까?”고 ‘나’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는 나와 타자의 세계적 순간이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스물아홉 살에 독일로 떠난 그는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살아가는 정체성과 대륙 두 개를 건넌 곳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감각을 표현한다. “어제는 당신이 나를 더 기다렸고/오늘은 내가 당신을 더 기다린다/그것만이 농담이 아닌 이국의 공항에서/상냥한 벗인 취기에게 말한다/사랑하는 사람아, 당신을 기다리면서 물들면서/나는 이 세상 속, 어떤 예쁜 사람이 되어/사라져간다”(「공항에서」)고 말한다.
그러다가 “우리가 아주 헤어져 목소리로만 만나는 귀가” 된다고 하더라도 “괜찮겠다”(「듣는 책」)고 말한다. 그건 쉽게 닿을 수 없는 타향과 고향의 거리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의 존재를 8년째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겐 “이 지구에 없는 목소리의 유랑인”이 남긴, 아주 긴 시간을 날아온 위로가 될 것이다.
그리운 시절의 순간, 폭력적인 체제 아래 보내야 했던 유년 생활, 이국에서 겪어야 했던 민족적인 ‘트라우마’까지도.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은 그가 끝까지 해야 했고 전하고 싶었던 목소리를 가장 하고 싶은 방식으로 전하는 시집이다. “오늘의 바람은 그다지 거칠지 않았다”고, “우리는 사람, 이라는 단수가 되고 싶었으나/우리는 사람들, 이라는 복수였다고”(「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말하는 화자에 시인을 빗대어본다, 감히. 아주 명랑하게 “예!”라고 답할 수 있었던 힘을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