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모자무싸>를 보고 나에게 질문을 던진 세 단어
프리랜서에게 주말은 주말이 아니다. 어떤 날은 매일이 평일 같고, 또 어떤 평일은 주말처럼 느슨하게 흘러간다. 고정된 시간 개념이 삶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하루의 형태는 일정과 일감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달력 속 파란 글씨와 빨간 글씨의 요일을 다시 의식하게 된 것이다.
토요일 오후 10시 40분,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시작된다. 보면 볼수록 이상한 기분이 든다. 등장인물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 내 이야기인가? 내 친구들의 이야기인가? 혹은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어느 누군가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다. 영화 감독을 꿈꿨지만 20년째 데뷔하지 못한 남자 황동만, 그리고 8인회 친구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현실과 거리감있는 균열은 존재한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세 단어가 나를 계속 고민하게 만들었다.
1. 목표
“지금의 나는 너무 너무 쪽팔려서 조금이라도 덜 쪽팔린 인간 되는거. 그게 내 목표야! 궁극의 목적 같은거 모르겠고. 없고. 지금 당장 덜 쪽팔린 인간 되는거."
까발려졌다. 내 안에 꽁꽁 숨겨온 무가치함을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되었다. 갑자기 던져진 솔직한 말들이 원치 않았다. 그래서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감춰 온 서러움이 들춰져버린 기분. 이상하게도 나는 그 장면을 계속해서 돌려본다. 드라마 속 대사라기엔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황동만의 말을 곱씹다 보면, 나를 마주보고 싶어지는 용기가 생긴다. 견디는 삶을 보며 견딜 수 있는 힘을 받는다는 점. 가장 이상하고도 매력적인 부분이다. 나의 궁극의 목적. 아직 잘 모르겠고. 지금 당장 덜 쪽팔린 인간되는거.
2. 목적
“인생의 목적이 뭐야?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성공 그런거 말고. 성공한 인간들 중에 등신들 많아. 어떤 인간이 되겠다. 그런 목적.”
이 질문을 생각해 본적이 있었을까? 계속 머리에 맴돈다.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나를 멈춰 세우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까지 목표 하나를 바라보고 달리는 것도 것조차 버거웠다. 상대적인 평가 속에서 시작된 10대, 계속되는 배움과 경쟁 속의 20대, 대학원 생활 속에서 나를 짓누르던 “더 잘해야 한다. 더 많이 알아야한다.” 라는 무언의 압박에서 살아왔다. 나에게는 늘 잘하려는 방향만 있었고, 왜 그렇게 살아야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된다. 목적이라는 단어는 거창해서 피해왔다는 사실을. 사실은 너무 거창해서가 아니라 너무 정직해서 피했던 걸지도 모른다.
3. 척
“본인이 악랄하지 못한데 왜 자꾸 악한 얘기를 하려고 들어. 스타일리시한 척 하는데 촌스러워가지고 미쳐 버리는줄.”
이 장면에서 척을 듣고 나는 그대로 나를 향해 날아온 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왜 이 장면에서 찔렸을까. 왜 이토록 불편한 장면에서 황동만이 나를 꿰뚫은 것 같이 무서웠을까. 척하기 바빴다. 멋있어 보이고 싶었다. 아니 적어도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완성도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로 나를 포장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된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건 완성도가 아니라 “들키지 않는 상태”였다는것이다. 이제는 촌스러워 보일지언정 솔직한 나의 모습들을 드러내고 싶다. 용기있게.
드라마를 보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이런 생각이 남는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떤 인간이 되려고 하고 있는가.
드라마는 끝났지만 질문은 계속 남아있다. 다만 나는 이 질문들을 이제는 피하지 않게 되었다.
갇혔을때 돌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