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은 유치한가
성인이 된 뒤에도 인형 키링을 사고, 말랑이를 만지고, 다이어리에 스티커를 붙이는 일은 어쩐지 조금 부끄러운 취향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더 이상 장난감을 살 나이가 아니라고, 이제는 쓸모 있는 물건을 사야 한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귀여운 것들은 자주 사소하고 유치한 것으로 밀려난다.
하지만 요즘의 귀여움은 단순한 장식이나 장난감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지친 사람들이 하루를 버티기 위해 곁에 두는 작고 부드러운 존재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필요한 순간
귀여운 물건들은 대체로 큰 기능이 없다. 키링은 가방을 더 편하게 들어주지 않고, 스티커는 일정을 대신 관리해주지 않는다. 말랑이는 해야 할 일을 해결해주지 않고, 작은 인형은 나의 피로를 없애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산다. 고르고, 만지고, 붙이고, 매달고, 서로 보여준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때로는 가장 정확하게 필요해진다는 것. 귀여운 물건들은 삶을 바꿔주지는 않지만 순간순간의 표정을 바꿔준다.
해야 할 일을 줄여주지는 않지만, 그 일을 해내야 하는 마음을 조금 가볍게 만든다. 귀여움은 아주 잠깐이라도 사람을 느슨하게 바꾼다.
동묘 앞에서 만나는 말랑한 세계
최근 동묘앞역 근처 창신동 문구완구거리가 다시 주목받는다. 한때는 어린이들의 학용품이나 장난감, 단체 준비물을 사러 가는 곳으로 여겨졌던 공간이 이제는 10대와 20대, 더 나아가 성인들에게도 익숙한 ‘귀여운 것 쇼핑’ 장소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말랑이와 스퀴시를 눌러보고, 볼펜을 꾸밀 재료를 고르고, 키캡과 키링을 뒤적인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일이 아니다. 작은 물건들 사이를 천천히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귀여움을 발견하고, 별것 아닌 것에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 자체다.
어쩌면 이런 공간이 다시 인기를 얻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귀여운 것들은 화면으로 봐도 좋지만, 직접 보고 고를 때 더 즐겁다. 매대 위에 가득 쌓인 작은 장난감들 사이에서 나에게 맞는 것을 찾는 일.
그것은 소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주 가벼운 취미이자 놀이가 된다.
어른에게도 장난감이 필요하다
어른의 물건들은 대체로 기능적이다. 노트북, 텀블러, 업무용 펜, 다이어리, 일정표. 대부분 무언가를 해내기 위한 도구들이다. 우리는 매일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더 잘해야 하고, 더 빨라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산다.
반면 말랑이와 인형 키링, 스티커와 캐릭터 굿즈는 대체로 아무것도 해내지 않는다. 그저 작고, 둥글고, 귀엽고, 때로는 정말 쓸모없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에 기대는지도 모른다.
귀여움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고, 성숙해지라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그저 가방에 매달려 있거나, 책상 한편에 놓여 있거나, 다이어리의 빈칸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귀여운 것은 약해 보이지만 사실 강하다. 존재 자체로 설득이 된다. 어쩌면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일은 현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만들어낸 작은 도피처 같다. 해야 할 일과 책임, 관계와 불안 사이에서 우리는 아주 작은 세계를 곁에 둔다.
귀여움은 우리를 잠깐 부드럽게 만든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일은 어른으로 버티기 위해 잠시 부드러워지는 일이다. 키캡, 말랑이, 스티커, 다꾸, 굿즈 문화의 유행은 단순히 귀여운 물건이 많이 팔리는 현상만은 아니다. 그것은 지친 사람들이 자신을 달래는 방식이고, 작고 안전한 취향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며, 하루를 조금 덜 차갑게 만드는 감정 회복 장치다.
쓸모없는 귀여움은 그래서 쓸모 있다. 그것들은 우리를 잠깐이라도 물렁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말랑한 시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