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화된 공식으로 무장한 뮤직비디오 사이에서, 2026년 상반기 나의 시청기록을 점령한 네 편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CORTIS (코르티스) - REDRED Conceptual Performance Film (2026. 4. 21.)
KPOP이 여러 세대를 거쳐 오면서 생긴 ‘멋있는 퍼포먼스’의 형식이 어느 정도 굳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코르티스의 ‘REDRED’는 기존 보이그룹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음악을 추구하는 만큼 퍼포먼스에서도 차별화를 보여준다. 흔히 멋있다고 여겨지는 동작들 대신 자유분방하고 위트 있는 동작들이 화면을 채우고 음악이 가진 무드를 직관적으로 해석해내며 그 자체로 신선함을 준다.
특히 이 영상에서 안무의 매력이 극대화된다. 일산 라페스타의 광장, 구름다리, 횡단보도 등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퍼포먼스 동선이 진행된다. 동시에 이를 담는 카메라 역시 흥미로운 구도의 연속을 보여준다.
'REDRED'의 퍼포먼스 필름은 찰진 음악과 안무를 감각적인 카메라 워킹이 완벽하게 받아주며 삼박자를 이룬다.
PinkPantheress - Girl Like Me (2026. 5. 9.)
'Girl Like Me'는 작년 5월에 발매된 PinkPantheress의 정규 앨범 'Fancy That'에 수록된 곡이다.
이 뮤직비디오는 4:3화면 비율에 키치한 팝 컬러, 그리고 스큐어모피즘의 이미지를 통해 Y2K 감성을 매력적으로 구현한다. ‘피치포크’에서는 이를 두고 런던 거리를 무빙워크로 만들었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뮤직비디오 속 독특한 무빙은 Rhythm Heaven(닌텐도 리듬 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 Pinkpantheress 특유의 에스테틱을 두고 일본 애니메이션이 나라에 대한 미적 환상을 심어주듯 영국의 거리에 환상을 심어준다고 말한다.
이처럼 ‘Girl Like Me’는 Y2K 레트로 감성과 서브컬처적 위트를 동시대의 가장 세련된 어법으로 번역해 내며, 영상이 만들어낸 가상의 런던 거리를 끊임없이 돌려보며 걷게 만든다.
Omega Sapien - Krapow (Official Video) (2026. 2. 12.)
‘Krapow’은 오메가사피엔의 앨범 ‘Leader’의 타이틀 곡이다. <쇼미더머니 12>에서 밀리와 함께한 무대가 화제를 얻으며 역주행하기도 했다.
‘Krapow’는 동남아시아풍의 독특한 음악적 분위기를 영상으로 확장한다. 무협 영화를 연상시키는 배경, 불교적 연출, 오메가사피엔의 비주얼과 소품까지 어느 하나 뻔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연출해야 하는 여타 VFX 작업과는 달리 의도된 조악함을 통해 오메가사피엔 특유의 미학을 더욱 선명하게 구현한다.
이는 베를린 뮤직비디오 어워즈 ‘MOST TRASHY’ 부문 노미네이트로도 이어졌다. 말 그대로 ‘가장 쓰레기 같은’ 뮤직비디오를 뽑는 자리이지만, ‘Krapow’에게는 꽤 명예로운 타이틀처럼 느껴진다.
완벽하게 통제된 고화질 VFX 영상들이 주는 피로감 속에서, 오메가사피엔의 trashy한 미학이 해방감을 선사하며 이 기괴하고 유쾌한 영상을 다시 찾게 만든다.
Effie - Red Horse (2026. 2. 26.)
에피의 싱글 'Red Horse'는 하이퍼팝 위에 하드코어의 리듬이 맞물리는 곡으로, 제목 그대로 붉은 말을 타고 내달리는 듯한 폭발적인 에너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러한 에너지는 열화상 카메라의 이미지로 시각화된다. 에피가 찍은 영상은 모두 붉은색을 띠며 과열된 에너지가 담겨있다. 2개로 분할된 화면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며 번쩍이는 이미지는 음악을 증폭시켜준다.
요즘은 이런 아티스트의 핸드메이드 영상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음악을 만든 사람이 영상 언어까지 직접 설계했기에 사운드와 이미지 사이의 연결이 더 선명하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화려함보다, 한 사람의 감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나간 기획이 주는 일관성이 인상적이다.
대형 자본의 정형화된 연출에선 맛볼 수 없는 에피의 순도 높은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 몇 번이고 영상을 찾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