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한 알에서 세상을 보고
야행화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려면,
그대의 손바닥에서 무한을 잡고
찰나에서 영원을 잡으라.
-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를 꿈꾸며>
짧은 문장과 엔터 한 번이면 모든 게 가능해지는 시대를 사는 동안, 나는 종종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길을 걷다가 마주하는 모든 사물과 자연을 들여다보던 여유는 온데간데 없고, 1초라도 더 빠르게 걷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데 시간을 투자한다.
쏟아지는 정보를 감당하기 버거운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지금보다 세상이 천천히 흘러가던 시절에 내가 좋아했던 것들에 자동으로 이끌리는 요즘이다. 그중 하나가 그림이었고, 어릴 적 그림을 사랑했던 이유를 책 <타샤의 기쁨>을 보며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적당함이 주는 편안함
몇 년 만에 펼쳐보는 그림책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내가 어디에서 책을 읽고 있는지도 모른 채 타샤의 그림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비밀의 숲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너무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따뜻한 색감과 적당히 흐릿하고 부드러운 선들로 이루어진 정겨운 풍경들이, 화려하고 선명한 현실에서도 '쉼'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지를 상냥하게 속삭이는 듯했다.
오늘보다 내일 더 빠르게 굴러가는 시대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보니, 갑자기 급해진 속도감에 중심을 잡기도 버거울 때가 있다. 이대로 가다간 나만의 속도도, 방향도 잃어버린 채 길을 잃고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되진 않을까 걱정했던 적도 많다.
이토록 정돈되지 않는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내던 중에 만난 책 <타샤의 기쁨>은 불안정한 나를 잠시나마 붙잡아 준 선물같은 책이었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 뛰어들기 전의 나는 어떤 풍경을 좋아했고, 얼마만큼의 속도감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는지, 잊고 있던 내 안의 적당함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멈춰있는 것들에서 붙잡은 안정
환상과 이별하지 말라.
환상이 사라지면, 그대는 여전히 존재할지라도 살아가는 것을 멈춘 것이니.
- 마크 트웨인, <적도를 따라서>
환상 속에 살지 말라는 사람들의 말이 무책임하게 들린 적이 있다. 그들이 가볍게 던진 그 한마디가, 당시 나에게는 내 삶의 모든 낭만을 버리고 현실만 따르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성과로 증명해 내야만 살아남는 세상에서 몇몇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좇는 일을 비효율적인 일로 치부해버린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마음의 안정과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귀하다는 걸 알기에, 2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나는 마음 한 구석에 환상을 품고 산다.
[그림]은 늘 내가 그리던 환상의 모습이었다. 어릴 적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의 생동감 가득한 그림을 볼 때마다 그 일렁이는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토록 신비롭고 아름다운 배경 속에 있으면 세상 모든 걸 가진 듯한 기분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타샤의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그려낸 다정한 숲속에서는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평온하게 숨 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그림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환상 속에 나를 그려넣으면,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도 조금의 에너지를 얻는 동시에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내가 끝내 놓지 못하는 환상은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하는 작은 숨구멍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세상이 점점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흘러가는대로 머무는 풍경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 다정한 환상들이,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아주 가끔 나를 붙잡아 주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