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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프랑스 문학의 대가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남긴 최후의 작품으로, 원본에 가깝게 옮긴 판본을 새로이 번역한 책이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서, 이 책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사실 어려워 헤맨 것에 가깝다. 그러나 종교를 가진 사람도 그랬으리라 생각하는데, 비단 교회의 성서를 알지 못함이 아니라 베르나노스의 철학과 영적 언어가 상당히 까다롭고 시적이기 때문이다.

 

먼저, 주인공 블랑슈의 존재가 정말 극적이다. 그 태생부터 공포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블랑슈는 작은 것에도 평생을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가족들에겐 항상 겁에 질려 있는 작은 토끼이고, 수녀들 사이에서도 묘한 시선을 받을 만큼 기개랄 것이 없다. 그녀의 겁은 혁명 속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수도원에 위기, 혹은 위기감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점점 작아지고 흔들리는 이 미약한 여성을 보고 있자면 나 또한 겁에 질리는 것만 같다.


저들의 죄를 대신해 용서와 자비의 뜻으로 맞이하는 죽음이란 무엇일까. 책을 읽는 동안 순교라는 행위 혹은 결심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겐 순명이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비참한 죽음이다. 비종교인이라면 대부분 후자일 것이다. 물론 이 책의 후반부에 맞이하게 되는 순교는, 누구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숭고한 일일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이것은 앞서 진행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종교인으로서의 가장 가난하고 가장 풍요로운, 가장 자유롭지만 가장 경직된 일.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행위. 블랑슈가 순교에 극한의 공포를 느끼고, 도망치는 데 이 책을 읽는 지금의 종교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단지 정신의 수련 과정으로서 방황으로 볼까, 아니면 비겁하다고 느낄까? 물론 대개는 합당한 고뇌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만 프랑스혁명처럼 이제 막 신의 시대가 저무는 때가 아닌, 이미 한참 인간의 시대를 누리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가 같은 효력과 의미를 갖는지 그 답을 알고 싶었다.


블랑슈와 대비되게, 기꺼이 삶과 죽음을 오가는 콩스탕스 수녀의 존재는 책의 논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어린이의 눈을 가진 그녀는 천진무구한 발언으로 불경과 경건을 오가며 블랑슈의 공포를 키우지만, 그렇기에 블랑슈의 공포를 꿰뚫어 보는 이해자이자 동료가 되어준다.


귀족 출신 부원장과 평민 출신 원장의 대비 또한 인상적이다. 전자는 영예를 지키고자 하는 귀족의 태도를 가진 인물로, 초반에는 블랑슈의 강력한 보호자가 되어주지만, 순교에 거리낌이 없고 외려 이를 강력히 주장함으로써 블랑슈에 절망을 안겨준다. 그러나 후자는 인간의 시대라는 급격한 흐름에 부합하듯, 젊은 수녀들의 목숨에 대해 신중하다. 살아있음으로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더 해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때 귀족 출신의 원장이 감옥에 갇힌 귀족들과 유사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조금 의미심장하다. 젊은 세대들은 삶에 장악당했지만 그 자신들은 삶을 '누렸다'라고 이야기하는 귀족들은 죽음에 대해 별다른 저항이 없다. 발버둥 치는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단순한 포기로 읽히기도 하지만, 귀족의 몫인 '영예'를 지키는 태도로서, 일종의 순교로 읽힌다. 귀족은 귀족에 따라, 수녀는 천명에 따라. 영예와 순명이 같은 것이라면, 계급제의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두 계층의 순리는 결국 막 등장한 시민층에겐 없애야 할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작위와 미신은 불평등의 상징이고, 이것들은 타파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은 역사 교과서에서나 짧게 지나갔을 뿐, <레 미레자블>이 내게는 그 시대를 보여주는 유일한 작품이었다. 그러므로 시민이 아닌 수녀를 내세워 당시를 이야기해 주는 책이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모든 사람이 모든 시민이 되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것, 억압당하고 죽어 사라졌던 것들이 꼭 총칼의 쌍방 부딪힘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블랑슈의 마지막 선택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삶에 대한 욕망이 죽음을 압도해 그저 끝까지 도망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내 죽음, 참으로 보잘것없는 죽음밖에 줄 수 없군요…."
 

 

책 뒷표지에 적힌 전 원장의 대사가 책을 덮고 나니 다시 보였다.

 

죽음이 보잘것없다는 것은 삶도 보잘것없다는 거다. 그런데 삶은 원래 아름답다. 찢기고 부서져도 아름답다. 그렇기에 결국은, 아름다운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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