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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내면을 읽어내는 주해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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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해본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쉽게 읽힐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배경은 프랑스 대혁명기, 공간은 가르멜 수도원인 데다 영화 대본 형식으로 집필된 희곡인 만큼 장면 전환과 대사 중심의 흐름만으로 서사를 따라가야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헤매지 않고 밟아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이번 문학과지성사 번역본이 색다른 독서 경험을 도왔기 때문이다.


베르나노스 연구자인 정영란 교수의 번역은 원문을 자연스럽게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역사적 배경과 작가적 의도, 인물 사이의 긴장과 대사의 뉘앙스를 세심한 각주로 보완한다.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주해형 번역의 장점을 단번에 체감할 수 있는 사례다. 이러한 번역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각주가 장면을 읽는 방식을 바꾸어 준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블랑슈 수녀와 함께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한 콩스탕스 수녀의 첫 등장 장면에서 그녀는 입회 이전의 일상을 수다스럽게 이야기한다. 얼핏 보면 천진하고 명랑한 성격을 보여주는 장면처럼 읽히지만, 각주는 작품 속 콘스탕스가 실제 역사 속 인물과 달리 블랑슈와 같은 2신분 귀족 계층으로 설정된 이유를 설명한다. 이는 단순한 설정 변경이 아니라 블랑슈와의 근접성과 차이를 동시에 드러내기 위한 작가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설명을 통해 콩스탕스를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블랑슈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


구 원장의 죽음 이후로 새 원장으로 임명된 리도안 수녀의 첫 등장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이전 원장 내지는 마리아 부원장 수녀와는 달리 현실적이고 담담한 자세로 공동체를 다독이는데, 번역본의 각주는 그녀의 대사 속에서 이어지는 속담과 구어적 표현들이 ‘평민 출신의 새 원장 특유의 어법’이라는 점을 짚어준다. 새로운 원장의 계급적 배경과 공동체 운영 방식까지 독자가 읽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작중 후반부에서 마리아 수녀가 원장의 발언 속에서 순교 의지를 읽어내는 장면에 붙은 각주는 공동체 내부의 긴장 관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공동체의 안위를 우선하는 리도안 수녀와 달리, 마리 수녀는 순교의 열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각주는 그녀의 대사가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원장이 마침내 순교 발원을 지지하는 뜻을 내비쳤다”는 의미라는 점을 명시한다. 덕분에 짧은 대사 안에서도 수녀원의 공기가 변화되는 미묘한 순간을 읽어낼 수 있다.




가장 현실적인 가상 인물, 블랑슈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존재가 실존 수녀들이 아닌 가공의 인물이자 작품의 주인공인 블랑슈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영화 시나리오 주인공의 자리에 걸맞게 가장 극적인 서사를 가진 인물이다.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했던 탄생의 기억, 본능처럼 새겨진 공포, 귀족 가문의 아가씨라는 신분을 버리고 결심한 수도원 입회, 심지어는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내면의 갈등까지 그녀는 전형적인 ‘주인공’의 조건을 모두 갖춘 듯 보인다.


그러나 작품은 그녀를 결코 영웅적 인물로 그려내지 않는다. 그녀는 공동체의 뜻에 동참하며 순교를 서원하지만, 콩스탕스가 비밀 투표에서 던진 반대표를 번복하면서 서원이 결정되자 끝내 두려움 앞에 무너진다. 그러고는 도망치듯 수녀원을 떠나 파리로 돌아간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도 사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안위를 염려하며 찾아온 마리아 수녀 앞에서도 수녀원 복귀를 두고 끊임없이 갈등하며 연약한 모습을 내비친다.


이처럼 그녀는 처음부터 완전한 성인이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존재다. 이런 연약한 인간적 면모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도 연결된다. 많은 연구는 블랑슈를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를 반복하는 인물로 해석한다고 한다. 실제로 블랑슈의 수도명은 ‘그리스도 임종 고난’의 블랑슈다. 이는 체포 직전 밤 죽음의 공포 앞에서 괴로워하던 겟세마네의 예수를 가리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태복음 26:39)

 

이는 기독교 신학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번민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자신의 두려움을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죽음의 그림자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다. 이 부분에서는 인간이면서도 신의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와, 유약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쳐 버린 블랑슈가 극명히 대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반종교 정책을 추진하던 혁명 정부로부터 체포당해 사형을 앞둔 동료들의 소식을 전해 듣고, 블랑슈는 자신의 공동체가 향하는 자리, 즉 단두대로 다시 돌아와 16명의 행렬에서 마지막 순교자가 된다. 이로써 작품은 ‘두려움 없는 성인’을 보여주기보다는, 두려워하는 인간 또한 끝내 어떠한 결단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순교의 숭고함 이면에 실재하는, 인간의 불가피한 연약함을 끝까지 바라보면서도 회복과 승리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작품이다.

 

 

(다시 ‘왕좌’ 광장. 이 장면이 진행되는 동안 수녀들의 성가 소리는 점점 줄어든다. 이제 '베니 크레아토르'를 부르는 목소리는 단 세 명뿐이다. 처형이 끝나감을 알 수 있다. 전면에 비어 있는 거 대한 호송 수레와 군중의 모습. 그 옆으로 성가를 이어가는 목소리들. 촬영기는 앞으로 크게 이동하며 군중의 한 부분을 점점 더 근접 영상으로 담는다. 이제 남은 건 멀리서 들리는 두 명의 목소리. 카메 라는 다시 앞으로 크게 이동한다. 이제는 더 멀리서 들려오는 단 하나 남은 목소리.

 

촬영기는 창살까지 전진한다. 수레의 창살 너머로 공포에 질린 블랑슈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마지막 목소리도 사라진다.


거대한 침묵. 블랑슈의 얼굴은 용기로 빛나는 모습으로 변모한다. 블랑슈가 노래를 시작한다. 카메라는 후진한다. 환한 모습으로 무릎 꿇은 블랑슈 주위로 군중들이 출렁인다.)

 

- pp.221-222 ‘장면 52’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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