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버킷리스트야 당연히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호기롭게 시작했다만, 생각보다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 탓에 급기야 검색창을 열었다. ’버킷리스트‘ 다섯 글자를 치니, 아래와 같이 AI가 브리핑해 준다.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정리한 목록으로, 원래는 말기 환자들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로 쓰였지만, 현재는 특정 기회에 해보고 싶은 소원 목록으로 널리 쓰입니다. 작성과 실행은 ‘이루고 싶은 것’으로 자유롭게 적고, 일상에서 우연히 달성되는 작은 성취감도 함께 챙기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버킷리스트라는 영어로만 단어를 보고 떠올렸을 땐 와닿지 않았는데,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목록이라고 하니 마치 찬물 세수를 한 것처럼 정신이 말똥 해진다.


 


1. 해외 즉흥 여행


 

나 같은 ’P’에게도 즉흥 여행이란 건 사실 꽤나 겁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심장이 두근대는 일이 또 없었다. 적어도 전의 경험에 의하면.

 

 

KakaoTalk_20260507_130534144.jpg



마냥 화창하고 산뜻하기만 했던 5월을 지나 본격적으로 녹음이 세상을 감싸기 시작하던 6월. 잎사귀들의 들숨 날숨이 습한 공기에 섞여 은은한 풀냄새가 조금씩 묻어 나오던 즈음. 강변역 버스터미널에서 나와 친구는 ‘운명의 룰렛’을 돌렸다. 버스 승차 홈의 번호를 모두 적어놓고 그중 하나를 랜덤으로 뽑았다. 그리고 그 승차 홈에서 갈 수 있는 7-8개의 지역 중에서 또 하나를 무작위로 정했다.


결과는 ‘오색.’ 생전 처음 듣는 곳으로 난데없이 1박 2일 여행을 떠나게 되었던 그 순간. 왠지 세상 어려운 인생이 다 재밌는 모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장 빠른 버스를 예매하고, 가는 길에 전화로 근처 아무 펜션에 예약을 하면서 짜릿함을 느꼈다. 왠지 정해진 길로만 가게 설정되어 있던 내 인생에 기분 좋은 버그가 생긴 기분. 너무 많이 플레이해서 익숙해진 게임에서 나도 모르던 이스터 에그를 발견한 느낌.


그 느낌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다음에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국내라면 몰라도 해외 즉흥 여행을 가려면 적어도 어느 정도의 재력과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하. 갑자기 아프리카로, 혹은 남극으로, 볼리비아로. 세계 당최 세계 어디로 떠날지 모르는 여행을 한 번 쯤은 떠나보고 싶다.


 


2. 나만의 엽서 선물하기


 

나에게는 두 개의 카메라가 있다. 디지털카메라, 그리고 필름 카메라. 요새 휴대폰은 카메라보다도 성능이 좋다고들 하지만 적어도 내 것은 그렇지 않다. 손버릇이 험난한 탓에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 결국 액정이 깨지고, 급한 대로 제일 싼 새 휴대폰을 구매했다. 카메라가 조금은 구린. 그래서 더더욱 디카와 필카를 애용하게 됐다. 화질은 조금 떨어질지라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화질이 좋지 않은 것에는 어느 정도의 당위성과 매력이 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래서 여행을 갈 때는 바리바리 카메라들을 챙겨 가 풍경 사진을 찍곤 한다. 몇 번 하다 보니 나름의 고집이 생겨 왠지 보는 만큼의 느낌이 온전히 담기지 않으면 가로앵글, 세로앵글, 줌인, 줌 아웃을 여러 번 해가면서 나름의 장인정신을 가지고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찍어 온 사진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인화해서 간직하거나, 벽에 붙여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DSC01262.JPG

 

DSC01267.JPG

 

DSC01220.JPG

 

[크기변환]DSC00672.JPG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좋은 사진을 나만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렇게 찍은 사진들을 엽서로 제작해서 나누고 싶다. 명함처럼 처음 만나는 분들에게 한 장씩 드리거나, 혹은 소중한 친구들의 생일 카드로, 또 소품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언젠가 사진이 쌓인다면 ‘너와 가장 어울리는 풍경으로 골라왔어’ 같은 멘트를 날리면서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3. 우연히 반가운 사람을 마주치기


 

버킷리스트는 마음에 꼭 꼭 담아둔 평생의 소원 같은 것만을 취급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우연이 개입하는 일도 바랄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사실 그게 그건가 싶기도 하다. 능동적이기보단 수동적인 개념으로.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 전자라면, 후자는 ‘ 언젠가 내 삶에 꼭 일어났으면 하는 일’일 것이다.


 

스크린샷 2026-05-06 230154.png

 


그래서 언젠가는 반가운 사람을 우연한 때 마주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라는 노래처럼. 언젠가 나는 이 노래를 지하철에서 들으면서 생각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가사에 꽤나 몰입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누군가의 발을 밟았는데, 그게 알고 보니 예전에 꽤나 친밀했던 누군가였다는 것이다.

 

반갑게 이런저런 옛날 얘기를 하면서 몇 정거장을 통과하는 그 찰나에 추억에 잠겼다가, 이내 상대방이 내리면서 급하게 인사를 한다.


노래를 듣다 보면 상황이 너무나 잘 그려져서, 이건 정말 작사가에게 일어났던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억겁의 인연이 쌓여야 생에 한 번 본다는데, 그렇게 우연히라도 다시 마주치는 인연은 왠지 그냥 흘려보내긴 아쉽다. 그래서 나는 반가운 누군가를 우연히 마주친다면 기어코 다음에 다시 만날 약속을 잡고, 그날의 우연에 대해 이야기하며 까르르 웃는 사치 정도는 부려보고 싶다.


나의 다재다능함을 알아봐 주신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 놀이터를 누비면서 같이 소녀시대 노래를 부르던 어릴 적 단짝 친구, 너무나도 험난한 사회생활에 비하면 포근했던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동기들. 누구든 반가울 것만 같다.

 

*

 

언제나 다 이룰 수 있을까, 노심초사 하지 말고 차근 차근.

 

살다보면 우연히 언젠가 이루게 될 작은 행복들도 버킷리스트에 기꺼이 적어넣고 오늘의 글을 마친다.

 

 

 

채혜인.jpg

 

 

채혜인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당근 당근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