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춤추는 사람들〉, 2000, 캔버스에 유화
내가 보테로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였다.
많은 거장의 작품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그림체를 가진 것이 기억에 남는다. 과장된 신체의 비율과 강렬한 색감은 자연스레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렇기에 예술의전당에서 보테로의 개인전이 열린다는 소식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풍요로움의 예술
“어느 날 스케치를 하다가 만돌린을 그렸습니다. 아주 풍만하고 넉넉한 형태였습니다. 만돌린 악기 중앙에 있는 구멍을 그릴 때, 실제로 큰 것보다 훨씬 작게 그렸습니다. 그러자, 마치 만돌린이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 저는 이 스케치를 바라보며, 무언가 중요한 일어났음을 직감했습니다.”

〈음악가들〉, 2008, 캔버스에 유채
파란색 옷을 입은 피에로가 들고 있는 악기가 바로 ‘만돌린’이다. 만돌린의 구멍을 작게 그림으로서 만돌린의 다른 면적이 훨씬 커 보이게 만드는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이 기법은 보테로가 그리는 인물의 이목구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얼굴에 비해 이목구비는 훨씬 작게 그리며 얼굴의 여백이 마치 터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보테로의 풍만함과 볼륨을 완성해주는 화룡점정의 역할을 한다.
그는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기보다 그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중시한다. 전시의 첫 번째 챕터인 ‘변주 Versions’에서 고전 명화를 그만의 그림체로 재해석한 작품을 보며, 그의 그림체가 마치 지문처럼 느껴졌다.

〈축제의 마무리〉, 2006, 캔버스의 유채
그의 볼륨감있는 그림체는 자신의 라틴 아메리카 정체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연작들에서 빛을 발휘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일상과 축제, 거리 풍경을 통해 그려낸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는 보테로의 그림체, 색감과 만나며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켄타우로스〉, 1995
그의 볼륨에 대한 연구를 자연스레 조각으로 확장된다.
회화에서 존재할 때는 만화 같은 비현실적 성격이 조각으로 옮겨지며 묘한 현실감을 갖게 된다. 쌀알같이 작던 인물의 이목구비가 입체감을 가지게 되면서 더 실제 사람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이 보테로만의 과장된 비례가 동물에게 적용될 때는 만화 캐릭터 같은 유머러스함이 느껴진다.
생동감과의 온도차

다만, 그의 그림은 생동감, 즐거움 그리고 생생한 색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감상하기에는 공간이 다소 어두웠다. 더하여 동그란 조명을 비추다 보니 작품의 가장자리는 그림자가 생기게 되면서 그림을 온전히 감상하지 못한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작년에 관람했던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의 전시 역시 어두운 공간에 조명을 비추는 방식의 공간연출로 구성되었는데, 바로크 전시의 성격과 잘 어우러지며 크게 감상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바로크 그림들의 드라마틱한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보테로 작품의 성격이 생동감 있는 만큼, 이를 고스란히 즐길 수 있는 공간연출이 고려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보테로만의 독특한 그림체에 대한 발전과정,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했던 그의 예술 철학에 대해 알게 되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의 독특한 비례와 색감은 지금 보아도 아이코닉함을 가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곧 다가오는 여름에 어울리는 풍요롭고 생생한 예술을 즐기고 싶다면 보테로의 그림이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