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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10이라는 숫자는 적지 않다. 한 곳에서 10년을 일하거나 누군가와 10년 지기가 되는 것이 쉽지 않고 대단한 것처럼 10주년을 맞이한 공연 역시 존경받을만하다고 생각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THE LAST'는 10년의 저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으로 보기로 결심했다.
스파이나 간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엄청나게 대단한 일을 할 것만 같지만, 이 작품은 보기 좋게 비껴간다. 북한의 남파 특수공작 5446부대의 엘리트 요원인 원류환의 미션은 바보로 지내는 것이다. 그와 다시 만난 리해랑은 로커 지망생, 리해진은 고등학생으로 남한에 들어와 있다. 원류환은 슈퍼 할머니의 집에서 늘 미역국을 먹고 물건을 배달하고, 리해랑은 오디션을 보면서 매번 떨어진다. 리해진은 고등학생이니 학교에 간다.
그들이 서로에게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라고 평하지만, 평상시에는 드러낼 일 자체가 없다. 그나마 슈퍼 할머니에게 물건을 자신들에게 납품받으라며 협박을 한 나쁜 사람들에게 적당히 겁을 주고 복수하는 정도다. 극 초반에 보여준 그들의 전투 실력은 다 어디에 쓰려고 이렇게 만든 걸까? 미션 임파서블이나 007 같은 미션이 좀 더 잘 어울렸을 만큼 혹독하게 훈련받았는데 말이다.
1부에서 이들의 시간엔 이렇다 할 갈등이 없다. 남한에 있는 엘리트들은 적어도 관객이 보기엔 특별한 성과를 낼 일이 없고, 북한에 있는 이들은 어찌 됐든 조선 민주주의 인문 공화국을 예찬하고 순종하라는 입장이다. 5446부대가 보여준 액션과 군무가 멋졌기 때문에 연출을 효과적으로 했으면 전달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어두운 무대에 주요 인물들이 스포트라이트를 한 명씩 받으며 소개되고 봉구가 사는 달동네의 식구들도 대사로만 묘사되고 있는데, 무대 배경화면에 시각적인 효과로 이름과 특징을 보여주는 식으로 말이다.
다소 잔잔했던 1부에서 5446부대를 모두 자결하게 하라는 위기 상황이 생기면서 2부에서는 훨씬 긴장감이 생긴다. 1부에선 잘 나오지 않았던 이중스파이 서수혁의 사연이나, 자신의 자랑이었던 원류- 리해랑- 리해진 삼인방을 죽이러 내려온 김태원의 갈등이 드러났으면 보다 흥미로웠을 것이다. 아끼던 요원들이라 그런지 직접 내려와서 칼로 제거하려는 것이 아날로그한 느낌이기도 했다. 서수혁은 총을 가지고 왔는데!
삼인방의 경우, 무조건적으로 조국의 뜻을 따르던 위대한 엘리트 요원이 세 명씩이나 자결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과정에서의 고뇌나 혼란스러움이 드러나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자결하는 것이 맞는데, 삼인방 서로가 서로를 만류를 한다거나, 사실은 뭔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이대로 죽기 싫어서 한참을 고민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건 어땠을까.
그렇게 여러 가지 플래그를 만들어두자고 한 건, 결말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처음 오디션에 합격한 리해랑이 김태원과 함께 떨어져 내린 것도, 원류환과 리해진이 결국 총을 맞은 것도, 이 공연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넘버가 있다면, 그건 세 명이 함께 부른 '빨래'와 '평범한 나라 평범한 집 평범한 나'일 것이다.
내 힘들었던 삶 내 고단했던 삶 너는 나를 안아줬지
너를 온통 껴안고 휘감아 나는 편안한 잠을 잤지
이제 뜨거운 저 태양에 나는 너를 펼쳐
너의 깊은 속까지 뽀송뽀송 다시 피어나기를 바래
이제 너를 힘껏 돌려 마지막 남은 너의 찌든 모습들까지
이제 너를 힘껏 펼쳐 마지막 남은 너의 힘들었던 순간까지
이제 너를 힘껏 돌려 마지막 남은 너의 찌든 모습들까지
이제 너를 힘껏 펼쳐 마지막 남은 너의 힘들었던 순간까지
날린다 날려 버려 걱정 근심 한숨 고통
날린다 날려 버려 힘들었던 우리 시간
날린다 날려 버려 모든 걸 날려버려
날아 날아간다 날아 날아간다
날아 저 멀리 날아간다
-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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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해진: 그럼 질문을 바꿀게요.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으세요?
원류환: 만약 그런 선택이 가능하다면 한 번쯤 평범하게 태어나는 것도 좋지 않간?
평범한 나라 평범한 집에 평범한 아이로 태어나서 고저 평범하게 살다가 계속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죽는 것
리해진: 조장 동무 꿈이 참 크시네요.
원류환: 아새끼. 그럼 넌 뭐인데? 날래 말해보라우.
리해랑: 아 뜸 들이긴.
리해진: 저는 그냥, 저도 평범하게, 평범하게 태어난 조장 동무 옆집에 평범하게 태어나 함께 우리 같이 산다면, 그런 평범한 일상을 산다면
원류환, 리해진: 평범하게 사는 게 우리에겐 꿈처럼 너무 멀리 있어 그저 저 멀리 까마득히 멀리, 그저 꿈처럼, 하늘의 별처럼 손 닿지 않는 곳 멀리
리해랑: 나는 말야, 평범하게 태어나, 너네 옆집에 슈퍼스타 초미녀로 섹시하게 태어나 너희를 신나게 가지고 놀다가 버릴 거야 내 노리개들아!
리해진: 어떻게 잘 해보십시오!
원류환, 리해랑, 리해진:
평범하게 사는 게 우리에겐 꿈처럼 너무 멀리 있어 그저 저 멀리 까마득히 멀리,
그저 꿈처럼, 하늘의 별처럼 손 닿지 않는 곳 멀리
평범하게 사는 게 행복이란 걸 평범한 사람들은 모를 거야 까마득히 멀리, 그저 꿈처럼,
하늘의 별처럼 손 닿지 않는 그 행복
평범하게 그저 평범하게 그저 평범하게
- 평범한 나라 평범한 집 평범한 나
대학로의 뮤지컬에서는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거나, 귀여운 유머가 들어간 장면이 종종 나온다. 이 작품의 경우도 슈퍼 어머니나 삼인방이 나올 때는 이야기가 촘촘하게 진행되기보다는 그런 귀여움으로 내용이 진행될 때가 많았다. 그럴 땐 무대가 다소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옹기종기 모여서 작은 무대에서 봤다면 더 귀엽게 느껴졌을 거란 상상도 했다.
군인이나, 스파이의 무게감을 보여주기 위해 어두운 면을 강조하다 보니 무대나 추가된 넘버도 어두운 것들이 많았고, 감정선에 집중하기보다는 장면이 단편적으로 제시된 경우가 많아서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한 지점도 있었다. 뮤지컬을 볼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마 이 작품은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주부인 스즈메가 스파이가 되기로 하고선, 평범했던 일상 모든 것이 평범하지 않게 느껴졌다. 눈에 띄지 않게 지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고, 그녀는 활동비로 지급받은 돈을 볼 때마다 그녀는 '휏휏휏휏휏'하는 귀여운 웃음소리를 내면서 활기를 찾기도 했다. 평범하지 않은 그녀의 친구는 나름대로 고단하게 살고 있고, 평범한 라멘 맛을 구현해야 하던 동료 스파이는 사실 기가 막힌 라멘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실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 돌이켜보면 평범한 사람은 없었다. 평범함 호소인인 경우가 많았지.
이 작품은 은밀하지도, 위대하지도 않다. 제목과 반대되는 내용과 메시지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그건 북한에서 조장들에게 강요한 삶이었고, 사소하고 평범한 삶을 꿈꾸는 것이 그들의 진심이었다. 그렇다면 공연에서 강조한 5446부대의 혹독함만큼, 대조적으로 평범한 삶을 꿈꾸는 셋의 사연 역시 조금 더 표현하면 어땠을까. 평범한 척을 하느라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지, 그것도 뼛속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5446부대의 정예 요원이 남한의 문화를 배우고, 말을 하고, 자연스럽게 생활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봉구의 달동네에 살고 있는 어르신, 청년, 아이들도 각자 평범함에 가려진 각자의 삶의 이면이 있었는지. 그렇다면 우리들에게도 얼마나 행복이 중요한 것인지 와닿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멋진 연기와 춤, 노래를 들려준 배우들과 이 공연을 준비한 이들에게 관객들도 더 많은 박수를 보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