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백지. 아트인사이트의 첫 번째 매거진 타이핑은 바로 이 지점, 엄청난 결과물이 아닌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에 주목한다.
타이핑은 글쓰기를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들의 전유물로 보지 않는다. 그냥, 지금, 계속하는 사람들의 것일 뿐이다. 이번 창간 호에 참여한 37명의 에디터 역시 글쓰기의 화려한 성공담보다는, 실패로 끝난 초고나 지우고 싶었던 것들을 숨김없이 적어 놓았다.

동기들과 각자 쓴 시나리오에 대한 평가를 주고 받을 때마다 우스개소리로 하던 말이 있다. 그 사람의 시나리오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누가 그 글을 썼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우리는 서로의 문장들을 보면 필자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채곤 했다.
그렇기에 내가 쓴 글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는 건 참 무서운 일이다. 그 글은 나 자체를 담고 있고, 여과없이 모든 걸 담은 글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은 치부를 드러내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글쓰기는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글쓰기란 문장을 지어내는 기술 이전에, 나를 드러내는 용기일지 모른다.
불완전함이 주는 위로
이런 이유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글 중 하나는 백소현 작가의 ’쓰지 않을 이유가 이토록 많았음에도’이다.
내놓기 부끄러워서. 완성되지 않은 것 같아서.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나에게도 역시 글을 쓰지 않을 이유가 늘 존재하는 것 같았기에, 글의 제목이 유독 마음을 붙들었다.

'살아오면서 내게 쓰지 않을 이유가 이토록 많았음에도 다시 자판 위에 손을 얹는다. 언제 또 도망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뭐라고 써본다. 어쩌면 나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마음이 사랑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인 문장들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내 서랍 속에서 잠들어 있는 글들을 다시금 꺼내보고 싶어지는 듯도 하다.

<타이핑 Vol.1>은 글이 시작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서 있는 모두에게 위로를 건넨다. 책의 창간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창작에서 '그냥, 지금, 계속'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는 없을지도 모른다. 완성에 가려진 모든 미완성들.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그 글에서 진짜 이야기들이 시작되는 것이다.
책을 찬찬히 읽고 나서 작은 종이에 함께 온 소개글을 곱씹어 보았다.
우리는 글이 시작되는 순간에 주목합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 충동처럼 울리는 키보드 소리.
말로 꺼내기엔 아직 이른 이야기들이 핸드폰 메모장, 카톡창, 구글 문서 한켠에 조용히 쌓여 갑니다.
정제된 글이 아닌, 흐르듯 쓴 문장들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글쓰기란 삶의 또 다른 형식입니다.
타이핑은 그 형식을 사랑합니다.
글을 읽고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지금 왜, 어떤 이유로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완성되지 않을까 두려워 그저 깊은 곳에 처박아두었던 글들이 떠올랐다.
<타이핑>은 독자에게 글을 잘 쓰는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 대신, 흔들리고 멈추고 또 다시 출발하는 그 과정이야말로 글쓰기임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려준다.
매거진 속 필자들이 각자 자신의 글을 사랑하는 방식을 지켜보며 나를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서툴지만 용감한 그 마음들에서 느꼈다. 이 매거진은 멈춰 있던 것들을 다시금 시작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