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아는 폭력적인 남편과 살아가는 여성으로, 매일같이 온갖 노동과 시아버지의 수발을 도맡으면서도 그 수고스러움을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델리아에게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델리아 앞으로 편지를 보낼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과연 누구에게 온 편지일까.
영화는 부부가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잠에서 깬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아내의 뺨을 때리고, 아내는 그것에 충격받지도 저항하지도 않은 채 아침이 시작된다. 그러한 폭력에 충격받은 건 나뿐인 건지 영화는 가난한 이탈리아 가족의 일상과 그에 어울리지 않은 밝은 노래를 곁들이며 진행된다.
엄마와 딸
델리아에게는 총 세 명의 자식이 있다. 첫째인 마르첼라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다니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채 엄마를 도와 일을 다니고 있다.
마르첼라는 엄마의 상황을 안타까워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도 엄마를 답답해한다. 항상 아빠에게 맞으면서도 반항 한번 못하는 엄마를,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집에서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델리아를 보며 마르첼라는 생각한다. 절대로 엄마와 같은 삶은 살지 않겠다고.
그런 마르첼라에게는 줄리오라는 남자친구가 있다. 좋지 않은 소문이 돌지만 어쨌든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다. 마르첼라는 그를 사랑하며 그와 결혼하고자 한다.
기다림의 끝에 시작되는 상견례는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어떻게든 마련한 음식은 풍족하지 않고 엄마의 옷은 기워 입은 태가 선명하다. 동생들은 시끄럽고 아빠가 마시는 와인은 불안하며 숨기려 했던 할아버지는 소란을 피우며 테이블에 합류한다.
소동이 끊이지 않던 불안한 상견례 끝에 딸은 약혼반지를 손에 끼게 된다. 그것을 보며 안도하는 나 자신에게 씁쓸함을 느꼈다. 그 시대, 여성에게 존재하는 목적지는 오직 결혼뿐이고 그렇기에 좋은 남자, 돈 많은 남자가 자신을 선택해 주길 바라야 하는 삶. 탈출구가 하나뿐이기에 그것에 전전긍긍하는 그들의 모습을 이해하면서도 길이 하나뿐이라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딸은 자신과 다른 길을 갈 거라 생각한 것도 잠시, 델리아는 마르첼라와 남자친구의 관계 속에서 위험 신호를 발견하게 된다. 자기 앞에서만 화장을 하라는 둥, 결혼하면 바로 일을 그만두게 할 거라는 둥, 딸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스킨십을 이어가는 그를 보며 델리아는 남편과 결혼하기 전 남부럽지 않게 사랑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 다짐했건만 결국 델리아와 마르첼라의 궤적이 비슷해져 가는 것은 어째서였을까.
결혼은 신중히 생각하라는 말에도 마르첼라의 생각이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델리아는 딸을 위해 모종의 선택을 하고 둘은 파혼하게 된다. 무심해 보이는 엄마에게 마르첼라는 엄마는 항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안다. 델리아가 딸을 위해 어떤 일을 벌였는지.
가난한 자도 부유한 자도
이 영화에는 여러 군상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좋은 남편과 괜찮은 삶을 꾸리고 있는 시장의 상인, 같이 빨래 일을 하는 동료들, 부잣집의 하인과 혼자의 힘으로 옷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까지. 그들의 처지는 모두 다르고 경제적인 수준 또한 모두 다르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점이다.
아들 줄리오의 형편없는 선택(가난한 집의 딸과 결혼하겠다는 것)을 두고 딸은 좋은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말한다. 선택은 자신이 할 거라고. 그 말을 듣는 아내의 표정은 부유한 집안사람의 표정도, 약혼이 마음에 들지 않는 엄마의 표정도 아니다. 여성의 표정이다.
델리아보다 훨씬 부유한 환경에서 살고 있어도, 정치 이야기에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 여자가 뭘 아냐는 식의 이야기를 듣기 일쑤다.
이들은 전부 다르지만 또 전부 같은 모습이다. 누군가는 돈이 없어 가난에 허덕이고 누군가는 부유해 딸도 학교에 보내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사는 듯하지만, 그 뿌리는 같다.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 되고 그들의 선택은 타인(남자)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
영화의 중후반, 델리아는 어떠한 결심을 하고 짐을 챙긴다. 친구에게 남편이 자신을 찾으면 본인 집에 있다는 알리바이를 부탁하기까지 한다. 친구는 드디어 떠날 결심을 한 거냐고 묻지만 델리아는 그런 게 아니라고 부인할 뿐이다.
드디어 델리아가 떠날 결심을 세웠다고 좋아하기도 잠시, 결전의 날 시아버지가 죽어 장례식이 열리고 만다. 시간은 흘러만 가고 조문을 온 친구는 아이들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대답한다. 아직 내일이 있어.
그렇게 맞이한 내일, 남편에게 들킬까 재빠르게 달려 도착한 곳은 바로 투표장이었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같다. 가난함도 삶의 지난함도 혹은 부유함도 벗어던진 채, 여성으로써 이야기하러 온 사람들. ‘남자’와 똑같은 몫의 한 표를 행사하러 온 여자들.
2026년의 우리가 보기에 참정권은 이미 끝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옛날에는 저랬구나,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하필, 2026년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내가 1946년 이탈리아의 이야기를 보며 눈물짓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참정권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일거다. 그리고,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기 때문일거다.
이런 영화마저 언젠가는 그저 한때의 고난으로 읽힐 수 있을 때까지. 우리에게는 아직도 내일이 남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