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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셰익스피어의 4대 희극 중 하나인 ‘오셀로’에서 남자 주인공 오셀로는 이아고의 흉계에 넘어가 자신의 죄 없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불신하게 된다. 데스데모나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나 오셀로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결국 아내를 살해하는 데 이른다. 나중에서야 오셀로는 데스데모나가 진실을 말했음을 깨닫고 크게 후회한다.


극단 적의 고전 다시쓰기의 연장선인 연극 ‘내가 살던 그 집엔’은 ‘오셀로’에서 진실을 말할 힘을 얻지 못했던 데스데모나의 입장에서 다시 쓰인 듯 보인다. 작품에 등장하는 총 4명의 여성은 시대상의 이유로 인해, 자신의 출신으로 인해, 여성이라는 이유로 말의 힘을 얻지 못한 이들이다. 힘이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원작 플롯 속 촘촘했던 플롯에 담기지 못한다. 대신 비선형적이고 분해된 플롯 속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재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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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의 시간대는 한참 산업화의 물결이 일던 1970년대의 한국이다. 연극의 시작을 여는 ‘나’가 부르는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당시 사회 불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당한 곡이었다. 반복되는 음악 ‘거짓말이야’와 ‘춤을 추어요’, 그리고 이에 맞춰 춤을 추는 배우들의 모습은 해방감을 보여주는 듯한 동시에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관객에게 알리는 듯도 보인다.


연극 중에는 집을 향한, 그리고 집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도망이 계속해서 제시된다. 집이 상징하는 의미는 다양하다. 지금 내가 머무는 집이기도 하며, 어디에 있는지, 정말 집이 맞는지 확실치 않는 고향을 뜻하기도 한다. 혹은 온전하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네 여성은 계속해서 집에서 도망쳐 집으로 도망쳐간다.


화자인 ‘나’의 엄마는 택시 운전사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부양하며 살아온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엄마에게는 원치 않았던 뱃속의 아이가 있으며, 어떻게든 그 아이를 지우고 싶다. 그렇기에 더더욱 돈을 버는데,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집에서 도망 나왔던 마마를 마주치며 드디어 자신이 바라왔던 도망칠 기회를 엿본다.


화교인 마마에게 1970년대의 서울은 또 다른 불안함을 지닌 공간이다. 당시 시행되었던 외국인 경제활동 규제정책과 한화에 대한 불합리한 각종 제한 정책으로 많은 화교가 한국을 떠나고 있던 상황이었다. 마마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과 결혼했지만 한국에 쉽게 마음을 붙이지 못한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그곳의 언어도 모르고, 가본 적도 없는 마마에게는 여전히 마음 붙일 수 없는 곳이다. 함께 가정을 이룬 남편은 평온해 보이나 동시에 자신에게 의심을 품고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마마는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다.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든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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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극단 적 / ©sol__Kim

 

 

평온하고, 누구보다도 자신으로 있어야 할 공간인 집에 있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은 계속해서 작은 도망을 친다. 거짓말을 하고 함께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두 사람의 유일한 숨구멍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엄마의 가족이 마마의 결혼반지를 가져가며 더 이상 이 시간도 지속할 수 없게 된다. 그러자 둘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도망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두 사람의 마지막 도망은 이 모든 일 이후에 태어난 ‘나’의 기억 속에서 상상을 덧붙이며 몇 번이고 재구성된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도망에 실패하기도, 혹은 성공하지만 결국 끝까지 완전한 집을 찾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자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거짓임을 언급하면서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한편, 마마가 살았던 집에서 살고 있는 베트남 이주 여성 꾸옌 역시도 자신이 온전히 발 디디고 살 수 있는 집을 찾던 이였다. 마마가 사라진 후 그 남편과 결혼한 꾸옌은 남편의 죽음 이후에도 이 집을 여전히 지키며 살고 있다.


불확실한 두 사람의 마지막 기억은 꾸옌과 ‘나’가 만나며 다시 한번 되풀이된다. 꾸옌의 이야기에서도 마마와 엄마의 이야기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 불확실하고 불명확한 이야기 중에서도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들이 각자의 삶과 집을 위해 도망쳐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도망은 회피가 아닌 각자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여정이 된다. 또한 이들의 이야기가 진실로 온전히 전해질 만큼 힘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 그렇기에 쉽게 뒤섞이고 방해받고 말았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모든 이야기의 이후에 살고 있으며, 아직 현재와 미래가 남아 있는 ‘나’는 이제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마마가 살았던 집을 떠나 어딘가로 떠나고자 한다. 온전히 기록되지 못한 과거를 뒤로하고 떠나는 ‘나’의 모습은 집을 찾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 주변에 남아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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