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를 향해 뛰었다. 학교 다닐 때가 생각났다.
회사에 늦을 것 같은 7년 차 직장인은 뛰지 않지만, 학교에 늦을 것 같은 학생은 뛴다.
그래도 지각은 면하고 싶어서, 7년 차 직장인의 늙고 병든 몸을 추슬러 뛴다. 겨우 버스를 타고 숨을 돌리다가 머릿속에 '지각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지각비'란 부동산에 무지하여 주요 급지에 부동산 구매를 하지 않았던 사람이 뒤늦게 집을 사려고 할 때, 시기가 늦어진 만큼 더 비싸게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조하거나 조롱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지각비라는 단어에는
(1) 부동산에 대한 무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2) 부동산에는 '주요 급지'와 주변 급지가 나눠진다는 것
(3) 부동산 구매는 '때'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이 모두 함축적으로 들어있다.
그래서 나는 도무지 이 자조하는 단어가, 조롱하는 단어가 평범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상황에 적응이 되지 않고, 단어 자체가 무서워지는 것이다.
첫째, 부동산에 대한 무지는 왜 대가를 치러야 할까. 이상하다. 세상에는 알고 배워야 하는 것들이 엄청 많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는 신형철 작가님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있다. 그는 시 한 편에 천진하게 웃는 남자의 모습을 오래 곱씹고,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에 애가 닳는다.
책에는 은밀한 슬픔, 명료한 슬픔, 새로운 슬픔, 영영 오지 않는 슬픔들이 있다. 이렇게 스스로를 이겨내면서도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 공부하려는 사람도 있는데, 부동산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는 것만이 대가를 치러야 할 만큼 부동산 공부는 중요하다는 것일까.
둘째, 사실은 안다. 부동산도 다 같은 부동산이 아니라는 것을.
강남 안에서도 테헤란로를 기준으로 테남과 테북, 서울 안에서도 강남 3구, 그리고 다시 용산, 마포와 성동, 그 안에서도 대단지 신축 아파트.
줄줄이 읊다 보니 헛웃음이 난다. 이 좁은 서울시 안에서 촘촘하게 나뉜 가격표는 더 이상 집이 집이 아니게 만들었고, 집이 계급이 되도록 만들었다.
"내가 사는 곳이 나를 말해준다"는 어느 아파트 광고 카피는 이 세상을 걷기 좋은 평지가 아니라 기어올라야 하는 가파른 절벽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아주 솔직히는, 나도 그 '급지' 안에 내 집 한 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절벽 위에서 전세 만기 되면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 없이, 절벽 아래의 절경을 굽어보면서 감상할 수 있을까.
셋째, 지각의 사전적 정의는 정해진 시간에 늦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부동산을 구매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 시간을 누가 정했는지, 언제 정해진 건지, 언제까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는데 지각생이 되었다는 게 억울하다.
"그럼 시간을 알려줬어야죠. 네?"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개근상을 받았던 내가 지각비라니, 인생은 모를 일이다.
근심이 깊어지던 찰나,
아... 정류장 지나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