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국가 간의 싸움이라는 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존엄을 무시당한 채 죽어가고, 또 살아남으려 애쓰는 개인들이 있다. 전쟁을 다루는 예술은 전쟁이라는 단어 안에 전부 담기지 못한 개인의 모습을 조망한다. 그 개인이 존재했음을 연극 속에서 재연해 내는 방식은 창작자 개인의 시선에 따라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영웅적인 인물을, 혹은 그 안에서 살아남은 인간의 이야기를, 혹은 폭력 가해자의 이야기를 다룰지도 모른다.

  

연극 <튤립> 역시도 전쟁, 그중에서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20년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극 중에서 명확한 연도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스쳐 지나가는 동양척식이라는 말과 지명 등을 통해 작중 시점이 언제인지, 더불어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대략 눈치챌 수 있다.

 

 

20260310210312_ofzaffve.jpg

 

 

1920년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익숙한 배경을 다루면서도 연극은 조금은 다른 접근방식을 택한다. 인물들은 시대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보다는 시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작중 배경 역시 조선이 아닌 일본이라는 곳을 비춘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시대적 상황을 설명해 주는 단서들은 간접적으로 인물들을 통해 전해진다. 무대 연출 역시 필수적인 소품만 배치해 두었을 뿐 장소를 재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소품보다는 마이크를 이용해 크게 울리는 배우의 대사가 중요해 보인다. 그렇게 필수적인 정보만 전달한 채 다른 시대 상황에 대한 단서는 생략한 <튤립>의 이야기는 시대상을 재현하기보다는 그 개인들이 살아남고, 행동하는 모습이 중요한 이야기가 된다.


혼란한 시대상과 달리 등장인물들의 삶은 평온해 보인다. 일본 상류층 가정에서 자란 쥬리프는 건실한 청년이며. 모두가 피하는 쿠로와 친구로 지낸다. 조선인 까마귀라고도 불리는 쿠로는 학교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살아간다. 쥬리프의 아버지인 야마토는 군인이었으나 현재는 동양척식에서 일하고 있으며, 어머니인 에리코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아들을 잘 키워내고자 한다. 가정부인 미호는 쥬리프의 과거를 조사하고 다니며 앞으로 집안에서 벌어진 여러 일들을 미리 눈치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극 중에는 꽃, 그중에서도 쥬리프(튤립의 일본식 표기)의 이름이기도 한 튤립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쿠로가 정성스럽게 가꾼 튤립밭, 튤립이 만개해 있을 쿠로의 고향 연추, 그리고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듯 집 안에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가득 차 있는 꽃들은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암시한다.


쿠로의 대사를 통해 언급되듯 튤립은 구근을 키우는 식물이다. 시간이 지나 꽃이 지고 겉으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죽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꽃이 펴 있는 동안 자라난 구근들은 땅속에 숨어 다음 개화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튤립은 야마토가 조선인 산모로부터 빼앗아 일본인처럼 키워낸 쥬리프의 과거에 대한 은유인 동시에, 등장인물들 사이에 묻혀 있는 각자의 균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안정적이고 명랑해 보이는 쥬리프는 겉으로는 야마토와 에리코가 바랐던 대로 완전히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라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쥬리프의 주변에는 그를 찾아온 본래 아버지였던 쿠로가 있으며, 야마토는 여전히 쥬리프를 보며 자신이 아이를 강탈해 왔을 때를 떠올린다. 에리코는 아이의 출처에 대해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으며, 미호는 이 이야기들을 대강 눈치챈 듯 보인다. 튤립의 꽃과 꽃대는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 여전히 구근이 있으며, 구근이 남아있는 한 쥬리프의 안정적인 삶은 곧 흔들리게 될 것이다.


쥬리프를 일본인으로 키워내고자 했던, 즉 내선일체를 실현하고자 했던 야마토와 에리코 역시도 자신만의 구근을 품고 있다. 에리코는 스스로가 쥬리프를 완전한 일본인으로 키워냈다고 믿으며, 그렇기에 쥬리프의 삶에 조금이라도 균열을 낼 여지가 있는 일들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일본인을 암살한 조 씨의 이야기에 굉장히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쥬리프에게 접근하는 쿠로를 적대시하기도 한다. 연극의 마지막 결국 쿠로를 독살한 에리코의 모습은 피어나려 하는 쥬리프의 구근을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막으려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반대로 아이를 강탈해 온 야마토는 오히려 불확실한 태도를 보인다. 일본인과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쥬리프를 보며 야마토는 실현하고자 했던 내선일체가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오히려 이런 모습은 일제가 식민지였던 조선에 강요했던 내선일체가 모순임을, 제국주의 내 권력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듯도 보인다.

 

 

KakaoTalk_20260312_113208003.jpg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히로시마의 회사로 향하는 쥬리프의 모습, 그리고 그를 향해 무언가 말하려는 미호의 모습으로 끝난다. 20년 뒤, 1940년대의 히로시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관객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미호가 만약 자신이 알고 있는 쥬리프의 비밀들을 모두 전한다면, 혹은 쥬리프가 자신의 과거와 쿠로의 행방에 대해 한번 관심을 가신 이상, 쥬리프의 구근은 계속 어딘가에는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대 앞에서 자신의 구근을 키워내거나, 혹은 실패하거나 시도하지도 않는 것 모두 쥬리프의 선택일 것이고, 자녀 세대인 그가 짊어진 또 다른 일이기도 할 것이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