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문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이 말에 대한 고찰, 우리의 삶은 매일이 선택의 연속이었고 선택 속에 살아가고 있다. 마치 판타지 게임의 안에서 플레이어처럼 결국 결말이 있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채 모험을 떠난다. 삶을 같이 살아가는 다양한 NPC들이 건네는 대화와 선택의 창은 우리의 삶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준다.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고른 인생에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로 인해 성장을 얻기도 사랑을 하기도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행운을 받기도 용기를 주기도 혹은 게임을 끝내기도 한다.
선택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인생이다.
한 가지 논외는 태어난 세상을 고르는 것, 아쉽게도 이는 선택을 할 수 없다.
누구나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싶겠지만, 그걸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태어남인 것 같다. 내가 인간으로 태어날 줄 어떻게 알았을까. 그저 어느 순간 자아의 조각들로 삶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불필요한 부분은 떼어내 감정으로 모양을 다듬고 더 필요한 부분엔 조각을 덧붙여 생각을 넓힌다. 그저 태어난 환경에서 놓여 우리는 그 상황에 맞게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내 찰흙은 더 컸으면 하는데 만들고 싶은 크기에 비해 조그마한 찰흙일 수도 있고 가진 찰흙에 비해 만들고 싶은 것이 없어 크기만 가졌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세상은 다채로워진다. 만약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 인생은 과연 어떻게 될까.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을 '자유라는 형벌에 처한 존재'라고 했다. 인간의 운명은 결국 인간에 손에 달렸다. 그렇기에 인간은 스스로를 만들어가야 하는 존재인데,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은 곧 특정한 나로 정의되기를 거부한다는 뜻 같다. 과연 이러한 삶은 어떨까. 우린 이 세상에서 어떤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할까.
모든 걸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선택으로 인해 크게 삶이 바뀔 일이 없다. 물론 뭘 먹을지 뭘 입지 정도의 작은 선택들은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인간은 공허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결국 마지막은 죽음일 테니 우연하게 죽을 그날을 기다리며 삶을 맴돌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가졌으니.
그렇다면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있음에도 공허해질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인간은 우리가 선택한 가치에 대해 기쁨을 얻고 슬픔을 얻고 깨달음을 얻는 것에 대한 값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살아가게 된 존재 아닐까?
돈을 생각하다 건강을 잃게 될 수도 있고 사랑만을 생각하다 삶을 놓칠 수도 있고, 나만을 생각하다 관계를 놓아버릴 수도 있다. 결국 그 선택들로 인해 나의 삶이 만들어지는 가치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인간을 굴러가게 해주는 원동력인 것 같다. 그게 비록 지치고 힘들더라도 혹은 희망과 내일이 될 수도 있고 또 한 번 살고 죽는 것처럼.
매일 그렇게 선택은 지치지도 않고 내 삶으로 다가온다. 색은 모두 섞으면 검은색이 되고 빛은 모두 섞으면 흰색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르게 선택했던 다양한 가치에서 또 하나의 생각, 다채로운 감정, 나의 결, 나의 향이 생긴다. 선택은 자유지만 그 선택은 결국 내가 된다.
근데 한가지 의문은 인간은 자유라는 가치가 있지만 늘 자유를 갈망하는 것 같다. 한 없는 자유 속의 불안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