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 책은 완벽하게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정작 작가 두 사람은 두 마리 토끼를 사냥할 마음도 없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덥석 잡히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 재밌으려고 글을 쓴 게 분명하다.
1. 허허실실 웃음 끝에 날아오는 서늘한 물음표
이 책은 참 재밌다. 모처럼 킥킥거리며 읽을 수 있는 유쾌한 글이었지만, 그렇다고 가벼이 웃어넘길 무게는 결코 아니었다. 단란하고 정겨운 풍경으로 사람 마음을 허허실실 풀어 헤쳐놓고, 순간순간 퐁 하고 터지는 말장난으로 느낌표를 던진 다음,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장면에 날카로운 물음표를 꽂아 넣는다.
성폭행을 당하고 자결한 아랑의 이야기를 문제의식 없이 구태의연하게 소비하는 주최 측에 대한 일갈이나, 연어 축제의 폭력성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 같은 부분들이 특히 그랬다.
"K-전통설화 속 여자들은 귀신이 되어서도 어쩜 그런가. 가해자들에게 바로 달려들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판국에 늘 그놈의 원님을 찾아가고, 원님이 그들의 억울함을 헤아려 가해자들을 대신 처벌해 준다. (...) 밀양시가 이걸 21세기에 접어든 지도 한참인 지금까지 소비하고 추앙하는 방식은 최악이다.“ (105p)
충동과 기쁨이 가득 찬 '축제'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마땅히 짚어야 할 문제 앞에서는 절대 눈 돌리지 않는 뚝심이 있다. 그러나 축제가 선사하는 들뜬 감각을 해치지 않는 선을 영리하게 지켜내며, 오히려 독자에게 생각할 여백을 남겨두는 세련된 기술이 돋보인다.
2. K-스러움의 촌스러움을 덮는, 서툴지만 다정한 진심들
과잉과 촌스러움, 고리타분을 특징으로 하는 이른바 'K-스러움'. 그 끈적함에 대해 심리적, 물리적 거리감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80년대생 작가들의 여정은, 한층 더 도시적 감각에 젖은 90년대생인 나에게도 비슷한 긴장감을 주었다. 나태한 지역사회, 탁상행정의 한계, 무기력한 사람들의 마지못함들을 쌩얼로 목격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우려와 함께.
하지만 작가들이 렌즈를 통해 경험하게 해준 지역축제는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오히려 선입견에 사로잡혀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나의 오만함을 돌아보게 할 만큼.
“우리는 이 조악한 무대 위에서, 그리고 얼마 되지도 않고 냉소적이기까지 한 어린 관객들 앞에서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라는 듯한 그의 에너지에 감화되고 말았다. 그저 열정만인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이 사람들에게 잘 가닿으려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과 타협해야 하는지까지 깊이 고민한 진중한 에너지. 그렇게 저 사람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이 축제의 어설프고 키치하고 우스꽝스러운, 그러니까 ‘K스러운’ 부분을 찾기 위해 약간의 삐딱함을 장착한채 두리번거렸던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마저 있었다.” (24p)
물론 지역사회와 탁상행정의 한계가 마법처럼 극복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갑자기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그러나 축제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진심과 저마다의 방식으로 땀 흘리며 축제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못내 마음 쓰이고 정겨웠다.
하나도 세련되지 않고, 완전 촌스럽고, 체계라고는 없고, 수준 높지도 않다. 하지만 태생부터 못되기는 글러 먹은 착한 사람들이 모여서 오손도손, 밥 벌어먹고 사는 데에 당장 도움도 안 되는 것들을 지키고 알리고 전하려 애쓰는 모습이 나는 너무 좋았다.
이 모든 감각은 온전히 작가들 덕분이다. 작가들은 한 발짝 떨어진 객관적 심판자가 될 것을 벼르다가도, 결국 그 온기 앞에서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만다.
“애국은 적어도 우리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는 ‘구린’ 것이었다. 나라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해 온 대부분의 것들이 구렸고, 나라가 애국이라는 이름을 들먹이는 경우 대부분 뒤가 구렸다. 그랬기에 축제에 오기 전 김혼비는 마뜩잖았고 박태하는 다소 심술궂었다. 미안했다. 의병 개개인의 삶의 결을 추상적 가치로서의 ‘애국’으로 뭉뚱그려 버리는 게 K-민족주의라면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그 어떤 진심들마저 ‘구림’으로 뭉뚱그려 버린 게 우리가 한 일이었다. 애국이니 민족주의니 하는 것도 어디 따로 뚝 떨어져 존재하는 가치가 아니라 결국 우리와 비슷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싸움과 마음의 합이란 걸 느낄 때 평소 ‘쿨함’으로 덮어 둔 마음 한쪽이 열려 버린다. 이 분분하고 분연한 마음을 어떻게 쿨하게만 넘길 수 있을까.” (80p)
결국 작가를 포함한 삐딱한 관찰자들은, 어느새 관찰하던 그 촌스러운 장면 안으로 순식간에 초대되고 만다. 엉겁결에 초대당한 우리 입에는 어느새 콩고물 묻은 떡이 한가득 물려 있고 말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애를 긍정하는 사람들의 글을 나는 참 좋아한다.
알지 않아도 되고, 알 필요도 없는 것들을 구태여 알고자 하는 의지를, 그 시시콜콜한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사랑한다.
"우리가 지역 축제를 쫓아 나선 마음 깊은 곳의 동력은 결국 '맞아. 세상에는 ○○이란게 있었지.'와 '그치, 그걸로 ○○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의 합주와 변주였다. 몰라도 일상생활에 하등 지장 없고 그래서 알 필요 없는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해 두고 싶어서였다. 무관심 속에서 조용히 사그라지고 있거나 소수의 사람들이 성실히 지켜 나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어떤 세계에서는 여전히 절실하고 또 많은 이들의 생계나 자부심을 떠받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279p)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참 좋았고, 책을 다 덮고 나서 맡아본 적도 없는 창포향을 상상하며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