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AREAST.ARCHIVE: The Contemporary Archive》
© NEAREAST.ARCHIVE, 2026
전시는 대개 정적이다.
전시장에서 작가를 직접 마주하는 일은 드물고, 관객이 작품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순간 역시 많지 않다. 혼자 관람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질문은 마음속에 맴돌다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 흩어진다. 혹은 함께 간 이와의 대화 속에서 흘러가거나, 메모장 어딘가에 남겨진다. 관객과 창작자의 대화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질문과 대화의 공유가 오가면, 작품의 몰입도는 달라진다. 이를테면 영화관에서 GV가 예정되어 있다면 관람의 태도는 달라진다. 질문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더욱 몰입하게 된다. 장면을 붙들고 의도를 추측하고, 질문을 응축한다. 그리고 질문의 순간이 오면 응축은 발산된다. 관점과 호기심이 오간다. 이러한 교환은 우리로 하여금 작품을 더 오래 곱씹게 만든다.
© 직접 촬영
탈중심의 미학
지난 20일, 용산의 이름 모를 폐창고에서 NEAREAST.ARCHIVE의 《The Contemporary Archive》전시가 열렸다. CSM, LCF, 국민대, Tokyo Mode 등 지역의 경계를 허물고 각지의 동양인 대학생들이 그곳에 모였다. 옷만을 모아볼 수 있는 전시는 귀하기에, 곧바로 서울로 가는 기차를 예매했다.
그들이 미술관이나 비엔날레가 아닌 폐창고라는 탈중심적 장소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제된 화이트큐브 대신 먼지 쌓이고 기름때 묻은 거친 공간. 이 지점에서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NEAREAST.ARCHIVE는 ‘우리 시대의 미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질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동양과 서양, 전통과 기술의 의도적 충돌. 폐창고는 누군가에게는 버려진 장소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지금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거울이다. 정제되지 않은 공간은 오히려 동시대적이다.
© 직접 촬영, 상: 최정현(GORIP), 하: 윤재현(YUN JAE HYUN)
충돌의 지점: 대화를 매개로 사유하는 주파수
잡동사니가 쌓여있는 콘크리트 공간을 뒤로하고 고요한 입구를 지나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나를 감싼 것은 사운드를 뒤덮는 중첩된 말소리였다. 소란스러움과는 다른 종류의 활기였다. 호기심이 교차하는 소리가 오갔다. 디자이너와 향유자가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말을 섞고 있었고, 그런 말소리는 질문에 대한 거리낌을 없앴다. 나도 용기를 내어 무언가를 물을 수 있었다.
전시를 보다보면, 작가의 의도를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을 마주한다. 작품 앞에 서서 한참을 생각하고 팜플렛을 뒤적이며 단서를 찾는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는 즉각적인 질문 투척이 가능했다. 대화를 매개로 작품에 대한 사유가 더욱 다층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디자이너 최정현(GORIP)과의 대화이다. 예술성은 취향을 타고, 이러한 특징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창작과 취업 사이에서의 고민을 말하는 그의 모습은 최근의 내 고민과 같은 선상을 거닐었다. 공통의 고민 속에서, 상업예술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뒤로 하고 예술의 행복함을 찾고자 했던 전시의 맥락이 떠올랐다. 상업성은 패션에서 배제할 수 없는 조건이지만 그 속에서 무엇을 지킬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또 다른 디자이너 윤재현(YUN JAE HYUN)의 작업물은 AI의 영향을 받지 않는 마지막 세대에 주목한다. 그는 대구를 비롯해 부산, 서울 곳곳의 할아버지들을 추적하며 그들의 의상과 택시기사의 주황색 셔츠와 같이 일상 속 깃든 장면을 작업으로 끌어들였다. 평범함이 그의 시선 속에서 재해석되고 고유의 맥락을 가진 형태로 재탄생한다. 대화의 순간이 없었다면 그 층위까지는 읽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학생과 작품, 관람자가 한 공간에 모여 자유롭게 말을 주고받는 구조는 감상을 넘어 경험으로써 전시를 사유하게 만드는 가교였다. 그것이 의도였는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투박함 속에 존재하는 대화의 향연이야말로 그들이 말하는 ‘날것’에서의 충돌을 가장 가까이서 체감하게 만들었다. 이는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라기보다 대화를 통해 의미를 확장하는 실험에 가까웠다. 전시 형식이 고정된 구조를 답습하기보다 관람 방식을 재구성하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형태의 전시가 더 많아지길 기대하게 된다.
© Yuto Nomura, NEAREAST.ARCHIVE
탈피와 실험의 기록
이 전시는 완벽하지 않다. 날것이 날것으로 침투한다.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일본 디자이너 YUTO NOMURA의 작업이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퇴화해가는 인간 고유의 신체 감각에 주목한다. 10년간의 서예 수련으로 다져진 체화된 감각을 입체적 구조와 볼륨으로 구현한다. 비정형적 형태의 흐름을 작품 속에 녹여내며 저항하는 신체성을 제안한다.
그의 작품 앞에는 젓가락이 함께 놓여있었다. 40쌍 한정 한정으로 제작되었다는 젓가락은, 작가의 할아버지가 수십 년간 산에서 대나무를 수확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작해온 지속적 실천에서 영감을 얻었다. 젓가락의 봉인은 종이 포스터가 들어있는 pvc봉투 속에 놓여진다. 젓가락이라는 익숙하고 당연한 도구는 여기서 지속성을 묻는 장치로 전환된다.
창조라는 것은 규칙이 없는 자유로운 놀이에 가깝다. 성공을 위한 것도, 이기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놀이를 위한 놀이다.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의 감각 속에서 뛰논 그들의 실험은 나로 하여금 ‘재미’의 순수한 주파수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형태와 물성의 고정된 양상에서 탈피해 영감을 재해석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지난 해, 졸업작품 제작에 있어서 형태와 기법의 탈피를 두고 수없이 고민했다. 이 전시가 1년 일찍 열렸더라면 작업 과정에서 생각의 시간이 조금은 줄었을지도 모른다.
패션이 가져다주는 근원적 즐거움에 의한 순수한 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