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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으로 보이는 서늘한 회색 하늘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승강장에서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굳어 있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손마디가 유독 하얗게 보인다. 그들 틈에 끼어, 오늘은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며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차가운 공기가 아래로 흐르기 때문일까 이런 날엔 괜히 마음이 더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끔, 그런 날에도 마음을 살짝 흔들어 놓는 것이  바로 시 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을 만났다. 1981년에 출간된 첫 시집으로, 시인은 “이 시대가 부숴뜨려온 삶의 의미와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향해 절망적인 호소를 던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잡은 시는 단연코 「이 시대의 사랑」 이었다.

 

 

나는 아무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두고 또 눈 저린 오줌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이 시의 첫 구절을 읽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집 안으로 흘러 들어오듯 가슴이 먹먹해졌다. 시인은 자신을 ‘아무도 아닌 존재’로, ‘곰팡이가 핀 빵’으로, ‘오줌자국’으로, ‘천년 전 죽은 시체’로 비유하고 있다. 단순한 자기 비하가 아니라, 시대가 개인을 어떻게 소외시키고, 사랑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언어임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특히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는 구절은, 사랑이라는 것이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지탱해주는 ‘부모’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시인의 외침처럼 처절했다.

 

이 시를 읽고, 최근에 겪은 일 하나가 스치듯 떠올랐다. 면접관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던 중, 내 답변이 질문의 의도와 맞지 않다며 그는 나에게 높은 언성으로 혼을 냈다. 죄송하다는 말과 더불어 다시 이야기를 시도했지만,  마치 ‘벽에다 두고 또 눈 저린 오줌자국’처럼 내 말은 공기 중에 흩어졌고, 나는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최승자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시인은 절망 속에서도 “사랑받지 못한 여자의 노래”를 부르며,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고 말한다. 시인은 절망을 선택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 말이 묻히거나 무시당하는 모든 순간에도  “내 말은 공기 중에 흩어지더라도, 내가 말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질 때마다, 시인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말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것이다. 그게 전부다. 작은 외침이지만, 그 외침이 모이면, 언젠가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시 한 편을 써보려 한다. 시인의 언어를 흉내내지 않으려 애쓰며, 내 마음을 솔직하게 이곳에 적어본다.

 


아무도 아닌 날

 

오늘은 내가 아무도 아닌 날

회색 하늘 아래, 나는 곰팡이처럼 붙어 있다

누군가의 말 속에, 누군가의 시선 속에

오줌자국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나는 여기 있다고

내 이름은 바람에 실려

누군가의 귀에 닿기를 바란다

 

사랑은 응답이 아니라

말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는 오늘도 말한다

나는 존재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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