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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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삶은, 마치 끝도 없는 축제 같았다. 집을 나서 길을 건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곧잘 제정신을 잃었다. 모든 것이 경이로웠다. 특히 밤은 더욱 그러했다. 죽도록 피곤에 절어 돌아가는 길에도 마음은 여전히 무언가를 갈망했다. 불이라도 나 주기를, 집 안 어딘가에서 아기가 태어나 주기를, 아니면 느닷없이 새벽이 찾아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주기를. 그리고 우리가 들판을 지나 언덕 저편까지 걷고 또 걷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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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햇살과 찬란한 나날로 이루어질 것 같던 열여섯 살 소녀, ‘지니아’의 삶은 언제나 강렬한 축제 같지는 않았다. 어른이 되고 싶어 성인 여성인 ‘아멜리아’의 세계를 동경하고 모방하고자 했지만, 지니아의 몸과 정신은 그 세계를 따라갈 만큼 성숙하지 않다. 지니아의 눈에 비친 아멜리아는 모델 일을 하는 등 자기 일이 뚜렷이 있고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경험을 가진 여자다. 그런 그녀를 막연히 동경하고 따라다니며 자신도 그녀의 삶을 통해 여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작품 속 아멜리아는 정말로 완벽한 여성에 가까웠을까. 책을 조금이라도 읽은 성인 독자라면 아멜리아의 삶은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삶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안정적인 삶도 없고, 사람과의 관계에 휘둘리며, 모델 일 역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다. 단지 어린 소녀 지니아의 시점에서는 그녀의 자유분방한 삶이 화려하고 환상적인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지니아의 시점은 성인이 되기 이전, 저마다 한 번쯤은 꿈꿨을 환상과 동경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답답하고 획일화된 학교에서 벗어나 성인이 되기만 하면 원하는 것들을 모두 누릴 자유가 주어지겠지, 지금과는 다른 찬란한 세상이 펼쳐지겠지. 그러나 막상 지겹게 버텨온 시기를 지나도 생각만큼 꿈같고 눈부신 세계만이 우리를 찾아오진 않는다. 그만큼의 불안과 고통이 있고, 설렘만큼 주어지는 잔혹함이 남는다. 이전보다 자유롭지만, 그만큼의 책임은 피해갈 수 없다.


이 책의 지니아 역시 그런 시기를 마주한다. 아멜리아를 통해 화가 ‘귀도’를 만나게 된 그녀는 귀도를 좋아하게 되지만, 그와 나누는 사랑은 그녀가 어른이 되기 위한, 아니 어쩌면 어른이 되기를 너무 갈망한 나머지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통로 같은 것이다. 성적 욕망이 분명하지 않음에도 어른이라면 ‘그래야 한다’라는 생각에 압도되어 딱히 거절하지 못한 채 이전과는 다른 세계로 엉거주춤 들어간다. 막상 들어간 그 세계는 지니아의 상상만큼 황홀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다. 오히려 불안함과 허무, 공허함만이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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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사레 파베세의 <아름다운 여름>은 1949년 발표된 중편 소설로 십 대 소녀 지니아가 겪는 사랑과 욕망 그리고 배신의 여름을 담아낸다. 파베세가 보여주는 지니아의 성장은 찬란한 나날로 인해 서서히 성장하는 동화적 이야기가 아닌, 세상의 잔혹함과 두려움을 맛보고 맞이하는 성장에 가깝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구원을 기다리지만, 그것을 얻지 못하고 냉혹한 현실만을 인지한 채 각자의 세상으로 흩어지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삶에 구원은 오지 않는다는 파베세의 울림은 그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1950년 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스트레가(Strega) 상’을 수상한 뒤인 그해 여름, 한 호텔 방에서 자살한다. 죽기 몇 달 전 그가 적은 글, “우리는 한 여인을 위한 사랑 때문에 자살하지 않는다. 자살의 이유는 그것이 어떤 사랑이든 간에 그 사랑이 우리의 빈곤함과 비참함, 무방비함, 그리고 허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은 이 선택을 하기까지 파베세의 삶이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했는지를 짐작게 한다.


구원이 없는 삶을 받아들였으나 자신의 삶은 끝내 이어가지 못한 파베세의 <아름다운 여름> 속 지니아는 혹독한 성장을 겪고도 삶을 계속 이어나간다. 책의 끝부분은 명확히 결정짓는 느낌이 아닌, 마지막 문장의 뒷 내용을 연결해도 될 만큼의 여운을 남긴다. 쓴맛과 비참함, 무방비 속의 허무를 깨달았지만 그런 사실이 삶을 이어나가지 못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지니아의 성장 끝에 아름다웠으나 무거웠던 여름의 잔향을 남겨주고도 자신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 파베세의 모순이 나를 슬프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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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밝고 뜨겁고 강렬하지만, 너무 덥고 습한 여름은 지나고 나서야 그 순간의 아름다운 한 때를 추억한다. 타들어 갈 듯한 더위로 짜증 나고 지쳤던 계절은 쉽게 미화되어 나름의 방식으로 더위를 식혔던 바람과 얼음, 높게 뜬 해를 기억하고 미소짓게 된다.


그리하여 파베세가 지은 “아름다운” 여름이란, 모든 날이 축제 같진 않았지만, 즐거웠던 한때가 분명히 있었음을 상기하는 믿음에 가깝지 않았을까. 삶의 끝에 허무가 남을지라도 사랑과 청춘을 논했고 여름이라는 계절을 아름답다고 이름 붙인 그는 어쩌면 삶을 계속 붙잡아보고자 했던 의지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지나간 여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묻고 싶다. 모든 나날이 경이롭지만은 않아도 한때의 좋은 경험을 추억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언제나 '그럼에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기를 바란다. 때론 낙관적 미래보다 구원이 없는 삶이라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욱 굳게 붙잡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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