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다. 학창 시절 동안 나는 원의 부피를 구하고 임진왜란 연도를 외웠지만,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법에 대해 배운 적은 없다. 그런 이론도, 과목도 없다. 그저 몸으로 부딪치며 하나하나 체득해 왔을 뿐이다. 인턴을 6개월만 해도 인수인계서를 작성하는데, 왜 평생 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인수인계는 문서로 만들어지지 않은 걸까. 그래서 데일 카네기가 만들었다.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술, 커뮤니케이션 기술 교육 프로그램을.

그러니까 본가 책장에 꽂혀있던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사실 데일 카네기트레이닝의 교육 프로그램인 '데일카네기코스 The Dale Carnegie Course'의 공식 교재이다. 그리고 이번 데일 카네기 NEW 인간관계론은 100년 만에 출간된 해설서이다. (수학익힘책 같은 것이려나)
저자 홍헌영은 대한민국에 단 한 명뿐인 '카네기 마스터'다. 카네기 마스터는 데일 카네기가 설립한 데일카네기트레이닝에서 인증하는 직책으로, 전 세계 3,000여 명의 트레이너 중 최상위 레벨이며, 전 세계적으로 30명, 아시아에서는 3명뿐이다. 한 마디로, 100년 넘게 이어온 카네기의 커리큘럼과 훈련법의 전문가 중 전문가라는 것이다.
30개의 원칙으로 챕터가 나뉘어 있다. 너무나 당연해 읽지 않아도 이미 처세술 천재가 된 것만 같은 착각이 들지만, 간식 먹듯 편하게 야금야금 읽다 보면 완전히 새로운 맛이 느껴지곤 한다. 코스는 이렇다. 데일 카네기 원칙의 본래 의미를 먼저 이해하면, 이후 홍헌영 작가의 적극적인 사례와 해석 그리고 실천 팁이 뒤따른다. 마지막으로 나만의 해석이 살을 붙이면 나만의 인간관계론이 완성된다. 지금 당장의 나에게 더 필요한 것들은 소화하고, 덜 필요한 것들은 나중을 위해 킵해둔다.
나의 욕구가 아닌 상대의 욕구를 불러일으켜라, 상대에게 순수한 관심을 기울여라, 상대의 이름을 잘 기억하라, 스스로에 대해 말하도록 경청하고 고무하라,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하라, 상대의 생각과 욕구에 공감하라, 명령하지 않고 요청하라, 솔직하고 진지하게 칭찬하라...그리고 이 모든 원칙들에는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순수함의 원칙
사람을 사람으로 보라는 것. 엄마가 아니라, 팀장이 아니라, 남자가 아니라, 20살이 아니라, 그냥 이름 석 자. 입고 있는 옷을 벗기고, 짊어진 책무를 던지고, 코팅된 겉모습을 들어내서. 목적 없는 순수한 궁금증을 장착하고 바라봐라. 삶으로써 삶을 존중하고 응시하라. 심지어는 니즈가 뚜렷한 비즈니스 관계에서도, 이 순수함의 원칙은 변함 없다. 인간 자체에 대한 호감은 본능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호감은 순수함과 투명함에서 자주 발현된다. 아주 깊은 곳에서 시작해 아주 멀리 퍼진다.
순수함이라는 키워드가 내 삶에 비집고 들어온 지는 얼마 안 됐다. 아이러니하다. 비집고 들어왔다는 건 이미 내 안에 없는 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꽤 씁쓸하다.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을 너무도 쉽게 빨리 잃어버리고들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순수함을 붙잡고 있다는 감각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을 붙잡고 있는 것과 같다. 붙잡아야 머무르는 순수함은 그렇다. 붙잡지 않아도 여전히 머무르면 좋으련만, 붙잡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고, 잡히는 순수함만으로라도 살아가자고 다독인다. 순수한 사람이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니까.
["한때 그는 용기를 다르게 상상했다. 어렸을 적 그는 용을 잡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행군을 그렸었다. 지금 그는 새로운 그림을 가졌다. 진정한 용기는 불안에 시달린다고 쉽사리 파괴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약한 모습에 좌절하여 상처 주지 않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이 상처받은 사람들로 보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사랑의 기초: 한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