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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최근 막냇동생이 대학에 합격하고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나도 묘하게 들뜨고 또 느슨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새삼스럽게 나의 그 시기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그때 적은 버킷리스트를 몇 년 만에 다시 열어보았다. 정확히는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조금씩 적었던 목록이다.

 

스마트폰 사기. 덕질 실컷 하기. 보석 십자수 하기. 타투하기. 서울 명소들 가보기. 수험 생활 정리하기. 연극 보고 영화관 가고 드라마 정주행하기. 술 마시기. 증명사진 찍기. 영화제 봉사하기. 책 많이 읽기. 쓰고 싶은 글 다 쓰기. 악기 배우기.


맨 처음 '스마트폰 사기'부터 시작해 지금 보니 웃음이 나오는 내용들이 많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룬 것들이라 놀랍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인이 되고 자유가 생긴 직후, 한동안 버킷리스트를 빠르게 지우는 일에 꽂혀 있었다. 늘 언제 죽어도 미련이 없는 상태가 되고 싶었다.


그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쓰려고 준비하던 중, 언젠가부터 버킷리스트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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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버킷리스트가 많은 것이 삶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더 가득한 사람 같지만 나의 경우는 반대였다. 리스트가 빼곡하던 시절엔 오히려 언제든 나를 버리고 싶었고, 그것 자체를 잊어버린 지금은 나를 매우 아끼며 지키고 싶다.


물론 그 빼곡한 리스트를 하나하나 지우는 과정에서 그런 마음이 생겨나고 지금에 도달했을 것이기에.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계속 떠올려보고 추진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예전처럼 전투적으로 정리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보다 여유롭고 온전하게 그 자체를 즐기고 싶다.


(믿기지 않지만) 어느새 2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내가 요즘 하고 싶은 일들은 이렇다.

 

마라톤 10km 뛰어보기. 국내외 여행 많이 다니기. 좋은 뮤지컬 만나기. 정말 예쁜 바다에 들어가 보기. 좋은 카메라 사기. 젊을 때 스냅사진 남겨보기. 탭댄스 배우기. 엄마와 여행 가기. 혹은 꼭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하루하루 많이 웃기. 박수처럼, 폭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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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오래된 일기도 다시 읽어본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7년가량 매일 일기를 썼었다. 같은 사람이지만 지금의 나로서도 다시 읽기가 버거울 정도로, 매일 지치지도 않고 부정적인 생각을 쏟아내며 살았다.


그러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내킬 때만 가볍고 편안하게 일기를 쓰고 있다. 2025년 7월의 어느 날에는 이런 문장을 끄적이기도 했더라. 나는 더 이상 나를 미워하지 않으며 나의 삶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다 잘될 거라는 말을 정말 싫어하는데, 다 지나간다는 말은 묘하게 위로가 된다. 오랫동안 내 미래가 전혀 궁금하지 않았음에도, 그게 야금야금 다 지나간 뒤 찾아온 지금이 우습게도 너무 좋아서. 정말 잘 살아보고 싶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날도 오는구나 싶게.


버킷리스트가 다 지워지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한다. 지워지는 속도보다, 새롭게 채워지는 속도가 더 빠르기를. 세상에 좋아하는 일, 재밌는 일이 계속 많기를.

 

언제나 삶에 미련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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