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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시리즈. <브레이킹 배드>와 <배터 콜 사울>을 탄생시킨 빈스 길리건은 이제 이름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그간 작품을 통해 인간의 심연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그가, 이번에는 SF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돌아왔다는 점에서 <플루리부스>는 공개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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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pluribus unum'

 

미국의 건국 이념인 ‘E pluribus unum’은 ‘여럿이 모여 하나’를 뜻한다. 이는 다양한 개인이 모여 조화로운 하나를 이룬다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름을 따온 빈스 길리건의 <플루리부스>는 그 의미를 가장 서늘한 방식으로 비틀어 우리 앞에 내놓는다.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거대한 집단 지성으로 통합된 세상에는 갈등도, 외로움도, 고통도 없다. 오직 우리라는 이름 안의 안락함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는 마치 이상적인 낙원 같지만, 묘하게 기괴한 광경을 마주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Apple's new series from Breaking Bad creator finally gets a proper teaser –but it's still short.jpg


 

모든 불편함이 사라진 채, 완전한 행복만이 남은 삶은 과연 온전한 삶인가.

 

하나가 된 세상은 너무나 평화롭고, 그 편리함은 무엇이든 해결해 줄 것처럼 달콤하다. 실제로 바이러스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조차 그럭저럭 만족하거나, 심지어는 바이러스와 하나가 되기를 원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하는 캐럴과 함께, '정말 모두가 하나로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문득 떠오른다. 그 설득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순간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선사하는 가장 기묘한 공포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매끄러운 세계에 균열을 가져오려는 인물들과 마주한다. 모든 것을 알고, 다 품어주겠다는 그 안락함을 거부한 채 '나'로 남기를 택하는 이들. 비록 그것이 끝없이 불안 속에 놓이는 길일지라도 그들은 자유를 놓지 않는다.

 

<플루리부스가 묻는 인간다움의 정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일상에 스스럼없이 스며드는 편리함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짜여진 행복보다 불완전할 자유일지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느끼는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채 주어지는 행복은 그저 영혼 없는 가죽에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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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다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세상에 저항하는 캐럴과 마누소스의 모습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상처 입더라도 온전한 주체로 남기 위해 우산을 펼 용기를 지녔는가. 그들의 투쟁은 우리에게 불행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편리함이 잠식해버린 시대. 최적화된 행복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진정한 자유는 쏟아지는 세상의 안락함 속에서도 우산을 펼쳐 들고, 내 몫으로 떨어지는 비바람에 맞서겠다는 용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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