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131.jpg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는데 누군가 갑자기 뒤통수를 후려쳐 얼떨떨하고 당혹스러운 게 사랑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10대와 20대를 지나 절정이라면 무르익었고 끝물이라면 흐려져 가는 청춘인 30대에 접어들었다. 사회도 겪어봤고, 사람도 다양하게 만나봤고, 사건 사고도 더러 겪으면서 많은 걸 배웠다. 아팠던 만큼 갈라졌고, 즐거웠던 만큼 그 틈새를 다시 채우면서 단단해졌다. 그 속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사랑을 해봤다. 처음은 서툴렀고, 중간 무렵은 너무 계산적이었으나 지금은 유연하게 언제라도 뒤통수를 후려칠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사랑 말이야!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해야지."


"사랑은 깨닫고 보면 빠져있는거 아니야?"

 

 

중학교 3학년 무렵 처음으로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 그전까지는 늘 사내 놈들이랑만 어울려 지낸 탓에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숙맥이었다. 당연히 나의 첫 연애는 대차게 쪽박을 차며 망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할 만큼 강렬한 실패였다. 모든 게 처음이었기에 모든 게 새로웠다. 몰아치는 감정을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할 뿐 이성적인 판단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 같은 건 없었다. 이성이 작동한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남들이 그렇게 뜯어말리던 CC를, 그것도 학생 수가 적은 소수과의 과 CC를 시작했다. 2년간 이어가던 만남을 끝내고 나니 이상하게 슬픔보다도 후련함이 찾아왔다. 어떻게든 비틀리고 벌어진 간극을 좁혀보려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번번이 실패하니 지쳐버렸던 것 같다. 이제 더 힘들지 않아도 되겠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이 내가 느낀 후련함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

 

힘들었던 2년의 세월로부터 희생과 양보, 그리고 존중과 이해를 배웠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남도 좋아하는 게 아니다. 내가 싫다고 남도 싫은 건 아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도 그럴 필요는 없다. 인간관계의 보편적 진리들을 그 힘듦 속에서 배웠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표현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그 배움의 연속으로 성장한 덕분에 지금의 나는 대체로 모든 사람과 원만하게 지낼 수 있고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리오, 이누이, 아카리, 유나의 사랑에서 나의 지난날들이 스쳐 갔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서투른 10대들의 사랑이 나의 지나간 시간을 되새겨주며 사랑의 본질을 선명하게 아로새겼다. 사랑은 언제나 예고 없이 불쑥 찾아와 나를 엉망으로 헤집어놓으며 정신을 쏙 빼놓고 사라진다. 정신 차리고 나를 바라보면 그때야 사랑에 빠져있음을 깨닫는다. 이제부터 사랑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순차적으로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다면 미안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다. 에로스는 늘 우리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숨어 아주 조용히 화살을 우리 등 뒤에 꽂아 넣는다.

 

 

"여기랑 똑같은 그냥 현실이었어."

 

"'여기가 아닌 어딘가'는 없다는 거구나."

 

 

치기와 충동은 성숙의 씨앗이다. 치기 어린 마음에 삼켜져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경험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우물쭈물하다 사랑을 놓쳐보기도 하고, 상대를 생각하지 않고 섣부르게 움직여 실패도 해봐야 올바른 방법으로 타인을 대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란다. 현실은 대체로 아프다는 걸 겪어봐야 꿈 같은 이상향은 없으며 나와 그 사람은 같은 세계를 살아간다는 걸 배운다. 확실하고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전달될 수 없고 흐려질 뿐이라는 걸 배운다.

 

부수고 부서지고 아물고 채워주기를 바란다. 나와 네가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우리가 함께 움직일 때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찬다. 사랑은 아프다. 믿음은 괴롭다. 충동과 욕심이 밀려들지만 힘겹게 버텨야 한다. 그렇게 낡고 헤져가는 사랑은 무엇보다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김상준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취향의 음미, 그 향유, 끝에서의 공유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