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윌슨의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는 한 작가를 오래 읽는 일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통과하고, 결국 삶의 방향까지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제인 오스티을 반복해 읽으며 자신의 인생 전반을 되짚고, 잊고 있던 감정과 선택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말년에 으르러 굵직한 선택을 감행하는 것 역시, 독서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지지대가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독서 경험을 떠올렸다. 아직 인생의 초반부를 지나고 있는 나에게 '내 삶을 관통한 작가'를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대신 삶의 몇몇 길목마다 조용히 스쳐 지나간 책들이 생각났다. 특별히 대단한 깨달음을 안겨준 순간이라기보다는, 막막할 때 겵에 있어 주었던 기억에 가깝다.
저자가 고백하듯, 암담한 순간마다 뜻밖의 행운처럼 끼어든 것이 독서였다는 사실은 내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냥 평범하지만은 않았던 것이 암담한 순간마다 예상치 못했던 행운이 끼어들어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런 뜻밖의 축복 중 하나가 독서 애호였다는 걸 나는 지난 몇 년의 경험으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 생각과 감정과 상상에 촘촘히 직조된 책 읽기라는 습성이 이제껏 내 삶의 윤곽을 잡아주었더라."] (p.26)
저자는 삶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제인 오스틴을 불러온다. 그의 소설 속 인물과 상황, 문장들을 기억과 감정 위에 겹쳐 놓으며, 자신이 품어온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조금씩 좁혀간다. 겉으로는 무탈하게 살아온 인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전후의 혼란, 가부장제 사회 속 여성으로서의 삶이 있었다. 지금 느끼는 허무와 공허함은 어쩌면 그때 제때 마주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늦게나마 풀어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독서력을 따라가며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작품을 두 편밖에 읽지 않았던 당시에는, 그 시대적 배경을 현재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통속적인 소설로 치부했었다. 손길 하나, 말 한마디에 왜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그 모든 과정이 왜 결혼으로 수렴되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바로 그 '당연하게 여겨지던' 관습 속에서 오스틴이 얼마나 위트 있게 비틀고 비판했는지를 짚어낸다. 제한된 선택지 속에서 여성들이 취할 수 있었던 미묘한 저항은 오스틴의 소설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든다.
지금의 소설들 역시 미래의 독자가 본다면 고개를 갸웃할 대목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내릴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자 발버둥이었을 테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책도, 인물도,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의 식견으로 이들을 판단하지만, 언젠가는 더 넓어진 시선으로 다시 품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