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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전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도 저를 사랑하길 바랍니다.”

    

아르헨티나 시골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에바는 더 나은 삶을 향한 야망을 키워간다.

 

열다섯 살이 된 에바는 마을을 방문한 탱고 가수 마갈디를 유혹해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떠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영화배우로 첫발을 내디딜 즈음인 1944년, 에바는 대지진으로 인한 난민구제 모임기관에서 노동부 장관인 후안 페론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에바는 페론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한다.

 

페론은 귀족과 군부의 멸시 대상이었던 에바와 함께 민중의 편에 서면서 감옥에 갇히게 되고, 이에 에바는 그의 석방 운동을 주도해 페론을 대통령에 당선시킨다.


후안 페론의 대통령 취임식 날 카사 로사디의 발코니에 선 에바는 퍼스트레이디로서 공식적인 첫 연설에 나서고, 군중은 그녀의 뛰어난 연설과 매혹적인 외모에 열정적인 갈채를 보낸다.

 

에바는 유럽 시장 개척을 위해 순방길에 올라 외교를 펼치지만 푸대접을 받는 수모를 겪는다. 귀족들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에바는 가난한 자와 노동자들을 위해 에바 페론 재단을 설립한다.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악화되어 가는 시국을 위해 에바는 자신이 직접 부통령이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군부의 거센 반발과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에 에바는 죽음을 직감하고, 마지막 대국민 방송을 통해 모든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발표한다.

 

에비타는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의 두 번째 아내였던 에바 페론의 생애를 그린 실사 뮤지컬이다.

 

솔직히 실사를 기반으로 한 공연에 기대감이 큰 편은 아니다. 실사를 기반으로 한 경우 자극적인 요소가 없어 큰 재미가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억지 감동을 쥐어짜 오히려 감정이 확 식어버리는 경우를 허다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연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별 큰 기대는 없었고, 그저 실망하지 않기만 바란다는 마음이었다.

 

 

 

노래로 얘기하는 송스루(Song Through) 형식



뮤지컬 에비타_공연 사진_체 역 한지상.jpg

 

 

공연은 시작부터 끝까지 작은 대사 하나까지도 노래로 주고받는 송스루 형식이다.

 

일반적인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쉼 없이 흘러가는 넘버들은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깊숙이 끌어들이며, 어느 순간 이미 클라이맥스에 도달해 있는 진기한 경험을 선사한다. 반대로, 자칫하면 음악에 서사가 묻혀 정보 전달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전개 방식 속 '에비타'는 '체(Che)'라는 새로운 역할을 내세워 서사의 이해도를 보완한다. '체'는 쉽없이 이어지는 음악 사이에서 사건의 흐름을 짚어내고, 빠른 호흡의 서사 속에서도 관객이 이야기를 놓치지 않도록 이끄는 안내자 역할을 수행한다.

 

 

 

영웅도 악인도 아닌 한 인물의 서사



뮤지컬 에비타_공연 사진_에바 페론 역 김소향, 후안 페론 역 윤형렬.jpg


 

공연의 또다른 매력은 '에바 페론'이라는 인물을 풀어내는 형식이다. 작품은 에바 페론을 단선적인 영웅이나 비극적 희생자로 규정하지 않는다.

 

가난한 출신으로 자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성공한 그녀의 서사를 화려하게 그려내면서도, 그 과정에 동반된 야망과 정치적 선택을 있는그대로 보여준다.

 

에바는 대중의 사랑을 진심으로 갈구하는 인물이자, 전략적으로 그 사랑을 이용하는 정치적 주체로 존재한다. 관객들은 이러한 인물를 바라보며 선과 악의 경계에서 쉽게 판단하지 못한 채 혼란과 질문을 마주하게 한다.

 

더 나아가 에비타는 단순한 권력자의 서사가 아닌, 남성 중심의 정치 구조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획득해야 했던 여성의 서사로 확장한다. 그녀의 선택과 야망을 섣불리 비난할 수 없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에바의 선택과 야망은 권력에 대한 탐욕이라기보다 여성으로서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하나의 생존 방식으로 보여진다.

 

에비타는 '에바 페론'을 둘러싼 찬사와 비난의 틈에서 끝내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선택한다. 그리고 성급한 판단 없이 관객들에게 판단의 몫을 남긴다.

 

라틴 리듬과 록 오페라, 팝 발라드가 교차하는 음악적 구성은 그 선택에 설득력을 더하며,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인물을 곱씹어 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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