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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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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다시 찾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영국에서 두 편의 공연을 본 뒤로 거의 2년 만이었으니 의식적으로 멀리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곁에 가까이 두지도 않은 셈이다. 남들만큼 자주 발걸음을 옮기는 편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반짝이는 모습이 유독 그리워질 때면 자연스레 뮤지컬을 떠올리게 된다.

 

내게 뮤지컬은 꿈으로 빛나는 이들의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장소다.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에너지, 객석과 무대를 오가는 열기, 정교하게 짜인 동선 속에서도 느껴지는 생동감을 따라가다 보면 비로소 살아 있다는 감각이 또렷해진다.

 

이번 공연의 커튼콜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는 순간을 마주했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아, 내가 이걸 보러 왔었지. “그래 한번 놀아보자!” 관객의 환호에 힘을 얻은 배우들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앵콜 넘버를 밀어붙이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군무를 지켜보는 관중 속에 서 있으면서 뮤지컬이 지닌 집단적인 힘을 새삼 실감했다.

 

그날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생동감 있는 에너지가 또렷하게 느껴진 이 공연은 14년 만에 돌아온 팀 라이스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에비타〉다.

 


 

1. 에바 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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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에비타〉는 가난한 시골의 사생아 출신에서 아르헨티나 퍼스트레이디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 보낸 실존 인물 ‘에바 페론’의 여정을 따라간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엿보이는 욕망과 야망, 시간이 흐르며 흔들리는 신념과 불안까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영부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에바 페론을 다층적으로 풀어내기 위한 작업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에바 페론처럼 당당하고 쟁취적인 실존 인물을 다룬 이야기는 적지 않지만, 그런 인물을 영웅으로 추켜세우지 않고 한 인간으로 바라보려는 접근법은 독특하다. 1978년 웨스트엔드에서 첫선을 보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의 에바 페론은 현대에 창조된 인물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입체적이다. 사랑과 욕망, 야망과 고독 등 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겹겹이 쌓여 있어 과거의 인물과 현시대 관객이 시간을 건너 연결된다.

 

전 세계 관객이 이 이야기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믿는다. 과거의 한 시대를 정교하게 복원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투영하게 만드는 힘이 이 작품에는 있다.

 

 

 

2.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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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주연 배우의 존재감은 분명하지만, 무대를 실질적으로 밀고 나가는 힘은 앙상블에서 나온다. 에바 페론이 노동자 출신이자 노동자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인물로 기억되는 만큼 그녀를 둘러싼 민중의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작품이다. 그녀의 주변에는 언제나 민중이 함께 존재하고 그 집단의 밀도는 다른 작품에 비해 유독 높게 느껴진다.

 

사회에서 민중의 에너지가 실제로 역사를 움직이듯, 이 무대에서도 배우들의 움직임은 하나의 흐름을 만들며 장면을 정진시킨다. 에바 페론의 욕망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는 만큼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방식 역시 직관적이다. 밀도 높은 군무와 강렬한 리듬감, 인물의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움직임들. 파워풀한 군무에 맞춰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 조명과 무대 디자인이 더해져 감정이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서사가 완성된다.

 

〈에비타〉는 33곡의 넘버로 구성된 송스루 뮤지컬이다. 음악 안에 모든 서사가 흐르기에 앙상블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세계적인 뮤지컬 거장 콤비인 팀 라이스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조합이 만들어낸 음악 위에 현대적 감각의 힙합 요소와 강렬한 리듬감이 과감하게 얹히며 작품은 한층 트렌디하게 재해석된다.

 

 

 

3. 무대 연출



독특한 무대 연출 역시 이 뮤지컬을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본막 너머의 배우들을 라이브 중계 영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특히 인상 깊다. 공연 중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흑백 영상은 무대의 생동감을 잠시 뒤로 물리며 관객을 한 발짝 물러서게 만든다. 마치 TV로 송출되는 뉴스 화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한 인물의 삶을 기록물로써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이로써 관객은 실제로 아르헨티나의 국민이 된 듯한 위치에서 그녀를 보게 되는데, 공연에서 잠시 빠져나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환기의 효과를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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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특이한 점은 에바 페론의 삶을 끊임없이 조명하고 의심하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 나레이터, ‘체’의 존재다.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에바 페론의 행보를 관객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게 할 것인지를 안내하는 일종의 길잡이다. 능글거리면서도 경쾌한 에너지로 무대를 가로지르는 그의 움직임이 관객은 관객이 지나치게 한 인물에 몰입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준다. 이 중간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14년 만에 귀환한 뮤지컬 〈에비타〉는 2025년 11월 7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개막하여 오는 1월 11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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