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 by Yang EJ (양이제)]
우리 삶에는 많은 기호가 함께합니다. 당장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봅시다. 시계의 시침은 하루를 뜻하는 12개의 숫자 위를 빙글빙글 돌며 우리 삶의 한 조각이 지나갔음을 알립니다. 길거리는 눈앞의 위험 요소를 주의하고, 안전하게 운전하라는 의미의 수많은 표지판이 즐비하고 있군요. 또한, 상점의 쇼윈도는 상품 가치를 광고하기 위한 무수한 글자들로 뒤덮여 있습니다. 숫자, 픽토그램(그림), 문자. 짧은 산책을 즐기는 동안에도 우리는 기호들의 숲을 지났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우리 삶 속에 가득한 기호를 설명하기 위해 기호(문자)를 빌리고 있는 모순을 범하고 있습니다. 기호의 함정에 빠진 꼴입니다.
그러나 기호로 기호를 설명하고 있다 한들, 글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기호(문자) 덕분에 나와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에게도 말을 건넬 수 있습니다. 글쓴이의 필력이 부족하거나 글을 익히지 못한 독자의 경우를 제외하면, 기호란 서로의 이해를 돕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만약 제가 [!]나 [?!]란 기호를 문장 끝에 사용한다면 어떨까요? 첫 문단의 문장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글은 우리 삶 속에 가득한 기호를 설명하기 위해
기호를 빌리고 있는 아이러니를 범하고 있습니다. 기호의 함정에 빠진 꼴입니다!'
'이 글은 우리 삶 속에 가득한 기호를 설명하기 위해
기호를 빌리고 있는 아이러니를 범하고 있습니다. 기호의 함정에 빠진 꼴입니다?!'
예시에선 마지막 문장에 [.] 대신, [!]와 [?!]라는 기호를 사용해 보았습니다. 전보다 높은 악센트로 제 글의 아이러니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를, 저의 황당함을 표현하여 독자 여러분께 공감을 구하기 위해서 [?!]을 사용했지요. [!]와 [?!]는 각각 큰 목소리와 당혹스러운 낯빛을 상징할 권리를 사회로부터 위임받은 기호입니다. 기호가 훌륭한 도구인 이유는 이런 데 있습니다. 기호는 서로의 정체성, 시공간을 초월하여 글쓴이의 의도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합니다. ‘|’와 ‘.’이 합성된 [!]와 ‘)’, ‘|’, ‘.’이 합성된 [?]는 지구 반대편에도 글쓴이의 의도를 실어다 줄 수 있는 지치지 않는 배달부입니다. 물론, 지구 반대편의 이가 글쓴이와 동일한 사회 규약을 학습한 상태라는 전제하에서요.
운이 나쁘게도, 지구 반대편의 이가 한글은 물론이고, 느낌표를 포함한 각종 문장부호를 학습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낯선 친구는 어느 날 해안가로부터 떠내려온 유리병 편지를 집어 듭니다. 병에 든 편지에 적힌 기호는 단지 얼룩이나 무늬쯤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와 [?!]는 놀란 사람의 눈이나 힘 있는 고함과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장에 실린 '아이러니'란 단어 또한 모순의 풍경과 닮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보다 형상과 닮아있는 표의문자라면 어떨까요? 과연 이 낯선 친구가 눈 목目자를 보고 곧바로 사람의 눈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잘 그려진 눈 그림을 받았을 때, 풍성한 속눈썹과 은은한 갈색의 눈동자를 보고 사람의 시선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혹시 짐승의 눈이나, 가는 잎이 만든 그늘과 그 사이로 보이는 늙은 고목을 떠올리지는 않을까요?
확률은 반반입니다. 매우 사실적인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화가가 모델의 붉은 뺨을 표현하기 위해 쌓은 붓질도 일종의 기호입니다. 아무리 섬세한 붓질도 결국 붓질일 뿐, 붓질 그 자체가 뺨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얇은 불그스레한 물감 뭉치가 뺨의 표피일 수는 없습니다. 생생한 그림은 결국 정성 들여 쌓은 기호의 산이고, 실체의 거죽을 흉내 낸 모조 박피입니다. 아무리 노련한 기술이 더해져도 캔버스 속 인물이 화방에 앉아 있는 모델이 될 순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기호체계일 뿐인 그림을 보며 생명력을 느꼈다면, 그건 우리의 상상력 덕분입니다. 그리고 이 체계가, 기호 간의 결합이 정교할수록 상상력은 더욱 활발히 촉발됩니다. 우리가 명화에 감응하는 것은 이런 원리입니다.
즉, 다음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기호는 시공간을 초월해 소통을 가능케 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형상과 닮은 복잡한 모양의 기호더라도 실체가 될 수 없습니다. 기호는 편리하지만, 본질적이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결론은 마치 실체와 기호의 관계가 수직적인 관계로 보이게 합니다. 기호란 실체를 결코 이기지 못하는 영원한 하수인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기호가 실체를 전복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책은 돈 드릴로의 <화이트 노이즈>입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