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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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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연극 ‘트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연한 사고, 뜻밖의 만찬, 수상한 재판. 이야기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트랍스는 출장길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작은 시골 마을의 한 저택에 머물게 된다. 집주인은 은퇴한 판사로, 자연스럽게 트랍스를 저녁 식사까지 인도한다. 만찬 자리에는 전직 검사·변호사 출신의 친구들까지 함께하게 된다. 처음에는 가벼운 식사 자리로 모였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평소 즐기는 ‘모의재판 놀이’를 제안한다. 유희로 시작된 재판은 점점 고조되고, 감춰진 죄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뒤렌마트의 단편 ‘사고(Die Panne)’를 원작으로 한 연극 '트랩'은 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아이러니를 블랙코미디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무죄에서 출발해 결국 유죄로 귀결되는 재판은 타인을 심판하는 자마저 심판대 위로 끌어올리는 순환적 서사로 작용한다. 또한 제삼자의 위치에 있는 관객 역시 자연스럽게 자기를 성찰하도록 만든다.

 

먹고 마시는 평범한 만찬에서 철학적 질문이 솟고, 장난스러운 대사 사이로 불편한 진실이 파고든다. 검사의 심문은 끝내 관객을 향한다. 단순히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항변하는 것으로는 무죄를 선고받을 수 없다. 한 줄의 질문이 끈질기게 관객들을 쫓는다.

 

“당신의 죄는 무엇인가?”

 

 

 

유죄 추정의 원칙


 

암전된 무대에 기름칠 된 8기통 엔진음이 울린다. 전작에서 ‘비싼 자동차 따윈 필요 없다’던 트랍스(박건형)는 이제 욕망을 숨기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던 스포츠카는 돌연 멈추고, 설상가상 숙소에는 빈방조차 없다.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한 노인이 나타나 자신을 은퇴한 판사라고 소개하며 트랍스를 집으로 초대한다.

 

사실 초대된 자리는 저녁 만찬을 가장한 법정이었다. 처음에는 기묘한 분위기에 경계를 놓지 않던 트랍스도 술기운이 오르자, 흥이 돋았고,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트랍스는 이른바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섬유 회사의 박봉 판매직이었던 그는 초고속 승진으로 판매 총책임자가 되었다. 8기통 스포츠카를 몰 수 있을 만큼 ‘성공한 인생’의 표본이 된 것이다. 변호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삶의 깊은 내막을 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승진을 방해하던 상사 기각스의 이야기까지 흘러가게 된다.

 

검사는 단서를 잡은 듯, 단기간에 승진할 수 있었던 배후에 상사의 죽음이 있으며 그것이 살인일 것이라고 논고한다. 그러나 트랍스는 그가 지병인 심근경색으로 죽었다고 말한다. 단순 사고사, 그것이 트랍스의 변론이었다. 검사는 심문을 살짝 우회해 그의 별칭인 ‘카사노바’를 물고 늘어지며, ‘로맨스’ 적인 서사는 없었냐고 되묻는다. 고양감에 휩싸인 트랍스는 기각스 부인과 불륜 관계였으며, 그녀를 통해 그가 심근경색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자백한다. 검사는 다시 죄의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건 확실한 고의적 살인이라고 말이다.

 

살인이라는 죄목 앞에서 트랍스는 오히려 흥분하며, 그간 숨겨왔던 악의에 허구를 보태 스스로 살인의 과정을 묘사한다. 기각스의 아내에게 접근한 계기, 입이 가벼운 동료에 불륜 사실을 흘린 과정, 그리고 이로 인해 상사의 심근경색이 악화되어 그가 죽을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말이다. 그러나 기각스에게 지병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를 악화시킨 원인은 갑작스러운 폭풍우였다. 이는 미필적 고의의 범주에조차 미치지 못할 인과였다.

 

“이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할 수는 없네.”

 

재판이 시작되기 전 경고했던 변호사는 속수무책으로 죄를 고백하는 트랍스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기 시작한다.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날씨이며, 트랍스에게는 이런 치밀한 살인을 계획할 지략도, 실행할 능력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변호에 트랍스는 오히려 모욕감을 느낀다. 그리고 더욱 적극적으로 자기의 유죄를 주장한다. 초반에 내내 고상한 상류층의 모습을 유지하던 그는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죄를 털어놓으니 홀가분하다는 감상을 남긴다.

 

결과적으로 트랍스에게는 사형이 선고된다. 그의 살인과 고의에 대한 증언과 증거는 불충분했으나, ‘악의’만큼은 차고 넘쳤다. 트랍스 역시 자신의 그 ‘악의’에 동의했고, 선고를 받아들였다.

 

 

 

함정(Trap)에 빠진 건 누구인가


 

극 중 내내 자리를 지키며, 자기 역할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사형 집행관이다. 그는 사형제도가 형식적 제도로 남기 시작한 이후, 모의 법정이 생긴 뒤에도 그저 보람 없이 먹고 마시며 자리를 채웠다. 사형이 선고된다고 해도 자신이 나설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텅 빈 역할의 공허함을 달해주던 건 장식처럼 전시된 교수대뿐이었다. 트랍스에게 사형이 구형되고, 천장에 숨겨져 있던 교수대가 내려온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이 만찬을 마무리할 디저트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가 만취한 채 잠든 밤이 지나고 아침, 장식에 불과했던 교수대에 트랍스가 목을 매단 채 죽어있었다. 지난밤의 여흥은 산산이 부서지고, 노인들은 절규한다. 그것은 마치 전직 법조인들을 향한 트랍스의 또 다른 유죄 선고 같았다.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며 존재감을 잃어가던 사형 집행관에게 남긴 선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집행관의 내면에는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누군가 죽음으로써 자신의 역할이 생기길 바라는 아주 사소한 ‘악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치 그의 이름 ‘트랍스(Traps)’처럼, 진짜 함정(Trap)은 따로 있었다.

 

대게 ‘내가 문제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큰 문제가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자신의 무결함을 주장하는 사람이야말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떳떳함이란 그 자체로 허상일지도 모른다.

 

진실은 잔인하고 불편하다. 트랍스의 죄를 단죄할 ‘법’은 없으나, 그는 분명 죄인이다. 이로써 죄는 법의 상위 개념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누군가 무죄를 주장할 수 있다면 법의 사각지대에 있을 뿐이고, 혹은 ‘아직’ 들키지 않았을 뿐이다. 누구나 죄를 짓는다. 또한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믿는 그 확신이야말로 더 큰 죄로 불러온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 변호사가 했던 경고가 다시금 떠오른다.

 

“죄를 고백하는 것이야말로, 무죄로 가는 지름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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