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는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명작을 통해 서양 미술사 600년을 조망할 수 있는 전시로 ‘르네상스’부터 ‘모더니즘’까지 총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총 65점으로, 이 중 25점은 샌디에이고 미술관 개관 이래 100년 동안 한 번도 해외로 반출되지 않았던 주요 상설 컬렉션이라고 한다. 나 역시 주변 지인에게 한국에서 보기 힘든 작품들이 전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 기회에 방문하게 되었다.
1. 유럽 남부와 북부의 르네상스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재발견, 그리고 인본주의의 확산을 바탕으로 피렌체와 로마,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사실성과 이상화를 동시에 추구했다. 이탈리아가 인체의 이상적 비례와 기하학적 구도에 집중했다면, 북유럽은 현실적인 풍경과 일상의 사실적 묘사에 주목했다."]
전시장에 입장하여 가장 먼저 만나보게 되는 시대는 르네상스였다. 우리가 ‘명화’라고 생각하면 떠올릴 법한 화풍의 그림들이었는데, 대부분의 작품에 종교적인 색채가 깔려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 섹션에서는 틴토레토의 <베네치아인의 초상>이 기억에 남는데 인물을 있는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놓은 듯한 사실적인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나 인물의 수염에서 한 가닥 한 가닥의 질감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그 표현력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2. 바로크
["바로크(17세기)는 정치·종교 격변 속에서 과장된 종교화와 일상·자연 관찰이 공존하며, 강렬한 시각 효과가 정물, 풍속, 풍경, 종교화 전반을 이끌었다."]
바로크 시기는 르네상스 시기와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사실적인 묘사가 조금 더 들어가고 종교적인 색채가 짙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대한 크기의 작품들이 조명 아래에 빛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러한 종교적인 느낌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와닿는 듯한 느낌이 들어 관람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 중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줄리오 체사레 프로카치니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였다. 나를 직시하고 있는 듯한 여성의 강렬한 눈빛과 손에 들고 있는 해골의 조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해골이라는 요소와 눈빛에서 느껴지는 회한 때문에 죽음을 은유하거나 죽기 전 참회하는 인물의 모습이라 생각했는데, 작품 설명을 보니 나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설명이 적혀있어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작품 속 여성, 즉 막달라 마리아는 세속적 재산을 버리고 경건한 삶을 선택한 인물이며 해골은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요소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막달라 마리아라는 인물은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하나의 모티프가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것과 그 모티프가 각각의 작품에서 아주 다른 분위기로 보이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3.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로
["로코코는 루이 15세기 시기 프랑스와 부르봉 왕가를 중심으로 장식성과 우아함을 앞세워 바로크의 무겁고 종교적인 경향에 반발해 등장했으며, 그랜드 투어 유행과 함께 베네치아·로마의 베두테가 각광받았다. 신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 미학(균형·대칭·이상)을 복원하며 바토니, 조각가 카노바, 앵그르가 중심이 되어 확산했다."]
해당 섹션에서는 눈이 탁 트이는 풍경화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 특히나 기억에 남는 작품은 베르나르도 벨로토의 <베네치아, 산 마르코 분지에서 본 몰로 부두>였다. 푸른 하늘과 투명한 물의 묘사가 어우러져 당시 베네치아의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내었다.
보고 있자면 왜인지 모르게 한적한 배들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
["19세기 혁명과 산업화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예술은 사회의 격동을 반영하며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지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로 나아갔다. 사실주의는 이상적 주제에서 벗어나 현실의 인간과 노동, 도시와 시골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 했고, 이는 인간 경험의 진실성과 사회적 현실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인상주의는 이러한 사실주의의 기반 위에서 발전해, 빛과 색채, 대기와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며 전통적 구도와 선묘 중심의 회화에서 벗어나 시각적 감각의 자유를 추구했다."]
앞선 세 섹션의 작품들에서는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였다면, 이번 섹션에서는 ‘인상주의’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상의 사실적 묘사보다는 작가가 받은 인상, 분위기, 개개인의 독특한 감각 같은 것들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은 오노레 도미에의 <극을 나서는 사람들>이었다. 명확하지 않은 선과 뭉개는 듯한 채색이 풍기는 기묘한 느낌, 그리고 탁한 색감이 주는 인상이 당시의사람들의 일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전달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해당 시기가 19세기 혁명과 산업화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예술은 사회의 격동을 반영한 시기라고 하는 설명을 읽으니 어쩐지 작품 속 인물들이 거대한 세상의 흐름 속에 치일 수밖에 없던 인간을 형상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5. 20세기의 모더니즘
["1870~1880년대 인상주의가 전통과 단절하며 프랑스에서 최초의 모더니즘이 등장했고, 점묘주의·야수파·나비파·상징주의 등으로 확장되었다. 20세기 초 예술가들은 공통된 규범 대신 개별적 실험을 추구하며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피카소·카사트·모딜리아니 등이 그 흐름을 이끌었다."]
해당 섹션에서는 앞선 시대들의 작품을 볼 때 느껴지던 통일된 감각보다 각 작품별로 느껴지는 분위기와 묘사가 뚜렷하게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호아킨 소로야의 <라 그랑하의 마리아>였다. 해당 그림의 설명에는 소로야가 ‘빛의 화가’라 불렸다고 적혀 있었는데, 그의 그림을 보니 왜 그렇게 불렸는지 알 수 있었다. 조명 아래에서 빛나고 있는 그림을 보고 있자면 그 안에서 빛이 반짝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작품을 가까이서 보면 거친 듯 섬세한 붓의 터치를 볼 수 있는데, 햇살이 비친다기보다는 흐르고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 바로 이 터치인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서양 미술사를 톺아보며 내가 어떤 시대의 화풍을 좀 더 좋아하는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그림은 어떤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전시에 관심은 있지만 미술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고민 중이라면, 나처럼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전시였으니 도전해 보는 걸 추천한다. 나도 몰랐던 나의 취향의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