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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관객을 만드는 예술경영>이라는 책을 읽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한 문장이 있는데, 어쩌면 그 문장이 내가 예술을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더 관대하게 세상을 바라보아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게 된 출발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술이란 특권은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것이고, 예술이 펼쳐질 곳은 사회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이어야 하며, 예술은 단순한 오락의 형태가 아니라 대중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


돌아보면 나는 이 문장을 따라 움직여왔고, 그 목표를 조금씩 실현하고자 아트인사이트에 지원했기 때문에 지금의 나를 만든 문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 책을 읽던 시기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였다.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바뀌고, 수업도 모임도 제한되던 시기. 공연장은 문을 닫았고, 공연장과 미술관은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겨우 숨을 이어갔다.


예술을 접하기 힘들었던 이때 마스크로 가려진 채 표정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예술의 필요성을 더 깊게 체감했다. 그때부터 예술경영 관련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펜데믹이 끝난 지금, 공연장과 미술관은 다시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예술은 소수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몇 년 전 NFT 열풍은 예술을 특정 엘리트 집단의 소유권으로 전락시키기도 했고, 최근 AI의 급속한 일상화는 예술가들의 입지에 대한 불안까지 가중시켰다.


이런 사회 변화 속 앞으로의 예술의 방향성과 지속성에 대한 고민들이 이어지던 와중에 <예술은 죽었다>를 읽게 되었다. <예술은 죽었다>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 작가들을 알리고, 지난 2018년에는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인 아트 바젤에서 발루아즈 상까지 수상한 저자가 예술의 본질과 방향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유한 기록이 담긴 책이다. 제목만 보면 예술의 '종말'을 선언하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어떻게든 예술의 본질을 지켜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획일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 속 예술은 무엇일까. 그리고 앞으로의 예술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예술은 죽었다


 

책은 총 세 개의 파트로 전개된다. 첫 번째 파트는 예술이 죽었다고 말하는 제목의 이유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때 말하는 예술의 죽음은 어떤 단일한 사건 때문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변화와 예술계 내부의 변화가 동시에 맞물렸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 이유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오래된 관념이 깨졌다는 지점이었다.


마르셀 뒤샹과 앤디 워홀은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며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덕분에 예술의 범위는 자유로워졌지만, 동시에 예술의 기준을 흐리는 새로운 혼란을 만들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며 “이런 것도 예술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지만, 곧이어 “그렇다면 예술의 기준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때로는 “색만 대충 발라도 예술 아니냐”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매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망설여지는 이유도 결국 이 모호함 때문이다.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자유는 역설적으로 예술가의 존재 이유까지 묻게 만든다.


이처럼 저자가 제시하는 첫 번째 파트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대 예술의 상황에 대해서도 사유하게 되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관념이 깨지고 난 뒤, 모호한 예술을 해석하는 권력이 특정 엘리트 집단에게 더욱 집중된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과거보다 대중과 예술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져 왔다는 생각도 든다. 흔히 ‘예술의 상업화’를 비판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작품이 높은 금액에 거래되었다는 기사 하나가 누군가에게 관심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미술관 역시 특정 계층만 드나드는 폐쇄적 공간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일상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물론 기사나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작품을 접하게 되면 위화감이나 거리감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저자가 말한 ‘예술 교육의 부족’이 해소된다면 충분히 줄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파트를 통해, 예술은 여전히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다시 삶의 중심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닿게 되었다.

 

 

 

예술은 삶이었다



 
“예술은 점점 삶과 분리된 어떤 ‘공부해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다. 본디 예술은 삶이었다. 예술은 몸으로 시작된 것이며, 우리의 삶 그 자체였다." p.78
 

 

이 문장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시대마다 예술이 어떻게 삶을 담아냈는가 하는 점이었다. 구석기·신석기 시대의 벽화는 그들의 일상을 기록했고, 중세의 예술은 신앙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품고 있었다. 당시의 예술은 오늘날처럼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저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예술은 종종 추가적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 되었다. 미술관에서 이어폰을 끼고 설명을 들어야만 작품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예술 교육’의 필요성이 떠오르지만, 동시에 그것이 예술을 다시 "배워야 이해할 수 있는 무엇"으로 만드는 또 다른 엘리트화를 강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도 든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도 없다. 오히려 문제는 ‘교육의 여부’가 아니라, 교육이 삶과 예술을 가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예술을 전문적 지식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순간, 예술은 다시 삶과 멀어진다. 중요한 것은 ‘예술을 공부하는 일’이 아니라, 예술을 다시 삶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교육이라는 점이다. 설명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작품이 삶의 언어로 다시 다가오게 하는 방식의 교육. 그 지점에서 예술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술은 왜 필요한가


 

현대사회일수록 예술은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저자의 말처럼 자본주의 체제는 독립적이고 자기책임적인 개인을 이상화한다. 그 속에서 공동체적 감각은 희미해져가고, 다수의 의견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손쉽게 소수로 분류된다.

 

그렇기에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태도이다. 각자가 다른 세계를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넓어진다.


이때 예술은 타인의 세계를 비추는 창이 된다. 누군가의 삶과 감정이 담긴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잠시나마 그들의 자리에서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예술은 이처럼 끊임없이 사유할 거리를 남기고, 그 사유는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관대한 태도를 갖게 만든다.


 
“세계의 불완전한 질서와 인간의 협업, 그리고 정치적 변화를 있는 그대로 예술 속에 드러내는 순간, 사회는 자기 모습을 새롭게 보게 된다. 그 깨달음이 사회를 바꾸는 출발점이 된다.” p.201-202
 

 

예술이 모든 사회 문제를 개혁할 수 있을 거라고 지나친 숭배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예술은 사람의 감각을 흔들고 익숙한 질서에 작은 균열을 내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의 예술은


 

그렇다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AI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앞으로의 예술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앞서 겪었던 역사에서 우리는 긍정적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 미술은 사진기의 발명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당시 미술계에서는 사실적 묘사가 예술가의 실력을 평가하는 기준이었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찍어내는 사진기의 등장으로 그 기준이 흔들린 것이다. 그러나 이 혼란은 오히려 예술가들에게 '사실'의 정의를 새롭게 고민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피카소와 반 고흐 같은 혁신적인 예술가들이 등장했다.


따라서 AI가 등장했다고 해서 예술가들의 입지가 무조건 낮아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AI로 인한 새로운 고민이 예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크다. AI 일상화는 아직 과도기에 놓여있기에 혼란스러운 것이 자연스럽지만, 과거처럼 우리는 결국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또 다른 혁신적 예술가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길을 찾아낼 것이다.

 

 

 

새로운 예술의 시작


 

<예술은 죽었다>는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지금 예술은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꺼내 보게 만든 기폭제였다. 책은 다양한 예술 작품과 사례들을 통해 현 예술계가 처한 상황을 명확하게 짚어내며, 단지 예술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처음 책을 펼치기 전에는 ‘예술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문구가 어쩌면 예술에 대한 과도한 숭배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면, 그런 의심보다는 오히려 앞으로의 예술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저자는 예술이 죽었다고 선언하지만, 정작 그 누구보다 예술의 미래를 치열하게 사유해온 사람이라는 점이 전반부에서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드러난다. 그 고민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예술은 죽었다는 말이 결국 새로운 예술을 향한 출발점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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