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현대 희곡론을 공부할 때, 우리나라의 근현대 초창기 연극들은 카페에서 공연되곤 했다는 내용을 배운 적이 있다. 무대와 객석이 구분된 극장이 보편적인 오늘날의 관객으로서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러던 중 대학로 지하의 한 카페에서 열린다는 연극 <도어 넥스트 헤븐>의 소식을 듣고 자연히 큰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다.

우선 공연 장소를 실제 카페로 택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등장인물인 카페 사장과 직원의 서사와 맞물려, 극 중 공간성이 더더욱 실감 나게 다가오는 효과가 있었다. 무대로도 구현할 수는 있었겠지만, 실제 운영되는 카페라는 점과 관객들이 배우의 앞, 옆, 뒤로 함께 앉아있게 되는 점이 매우 독특하고 신선했다.
좌석 위치에 따라 이토록 시야가 다채로운 공연이 또 있을까. 필자가 앉은 좌석에서는 바로 옆으로 배우가 등장하고 퇴장하기도 하고, 앞쪽의 벽장에서 소품을 집어 드는 장면이 다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주변 공간을 다시 인식하게 되는 연극적 체험이 가능했다.
이처럼 흩뿌려진, 수평적인 형태의 관객석을 마주하기가 배우들에게도 쉽지 않았을 것 같지만 그 밀착된 환경 속에서도 두 배우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대화를 나눌 땐 마치 둘만 있는 것처럼, 또 노래할 땐 진짜 관객들을 향하듯이 자연스러웠고 몰입도가 높았다.
장면에 따라 여러 색깔로 바뀌던 카페 조명 역시 풍부한 분위기 조성에 효과적이었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같은 철학적 상징들을 바탕으로 두 인물의 밀도 있는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 흥미로웠다.
젊은 사장은 음악이라는 꿈에 있어 두려움과 불안함을 함께 느끼며, 직원은 음악적 재능을 지녔으나 사장을 대할 때 사랑과 의심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이에 두 사람은 반복적으로 선택의 문 앞에 서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도어 넥스트 헤븐', 즉 지옥을 천국 옆의 문이라고 묘사한다. 천국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아주 가까운 곳. 이는 "악마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의 얼굴을 하고 온다."라는 프로모션 문구와도 맥락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사랑과 영원, 그리고 증오와 배신 역시 정반대의 단어들인 것 같으면서도 실은 벽 하나로 겨우 나뉘어진 사이인지 모른다.
흐름이나 동선이 화려하지는 않으나, 이러한 내용을 담아 치밀한 대화가 전개되는 2인극의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릴케 <말테의 수기>의 한 구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서로를 힘들게 하는 두 사람의 운명을 설명하기 위해 제3의 인물을 개입시키다니 나는 얼마나 바보요 흉내쟁이에 불과했던가. (...) 두 사람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어렵다. (...) 고통에 시달리고 행동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그들.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
<도어 넥스트 헤븐>은 다른 요소들을 덜어내며 두 사람의 욕망과 운명을 응시하는 일에 도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특히 두 사람이 서로의 천사이자 악마가 되는 순간들, 그 미묘한 감정선에 집중한다.

끝으로 음악에 관한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이다.
극에서 메인 주제곡이자 히트곡이라는 설정인 동명의 음악은 시작 전 내부에 계속 울려 퍼져서인지 공연 중 등장하자 바로 익숙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도 후렴이 맴돈다!) 극 전반에 걸쳐 사장과 청년이 겪는 갈등의 중심에 있게 되는 것이 그 곡이기도 하다. 대사와 더불어 인물들의 복합적인 내면과 관계성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연출적으로도, 극의 소재로도 음악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했다고 생각된다. 대사가 많은 2인극의 특성을 보완하며 분위기를 환기하기도 했다. 카페의 잔잔한 공기와 음악 위로 조용히 응축되어 폭발하는 에너지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처럼 연말을 맞아, 보다 도전적이고 날것의 연극을 관람해 보고자 하는 관객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공연이 될 것이다.
<도어 넥스트 헤븐>은 오는 12월 21일까지 대학로 카페 CIRCA1950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