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읽고 쓰기는 지극히 내밀하고 고독한 행위이면서 타인을 텍스트를 만나고 내면을 텍스트로 구성하는 상호작용이다. 저자 수잰 스캘런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홀로 자신을 돌보기도 하고 앞서 살았던 작가들에게서 자신을 서술한 언어를 깨닫기도 한다. 유년기에 겪었던 어머니의 죽음, 대학 진학 후의 자살 시도와 정신병원 입원, 고립, 다시 사회로 돌아오는 모든 과정에서 읽고 쓰기는 저자의 버팀목이었다.

    

국내 번역본의 제목은 '의미들'이나 원제는 ‘Committed’이다.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자 하는 의지를 함의한다고 볼 수 있다. 이어 구체적인 용례를 보면 ‘헌신하다’, ‘맡기다’, 혹은 ‘입원시키다(정신병원에)’라는 여러 의미를 갖고 있다. 입원한 환자였던 작가의 상황부터 글쓰기와 독서, 문학에 몰입하는 작가의 모습을 두루 표현하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의미들'이라는 제목은 다소 원제의 맥락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보일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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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병원에 입원했던 시기에는 환자의 과거와 병세 사이의 인과를 파헤치는 치료법 '되찾은 기억'이 인기를 끌었다. 원인이 되는 기억을 찾아낸 다음, 병명을 진단하고, 부족하거나 과한 체내 화학물에 대한 처방을 내린다. 합리적인 절차로 보이지만 스캔런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진료는 환자에게서 일종의 규격을 발견하고 유형화할 뿐이었다. 진료 차트에 수잰 스캔런의 이야기는 약화되고 생략되었다.


진료 차트의 객관적인 병명으로 요약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을 복원하려 애쓴다. 병실에서 뒤라스, 실비아 플라스, 길먼 등을 읽고 그들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삶은 아주 일찍부터 늦어버렸다는 뒤라스의 서술과 자기를 맴도는 엄마의 죽음은 과거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며,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나 길먼의 누런 벽지는 '미친 사람'이 된 지금을 수용하는 텍스트였다. 작가는 이렇게 독서와 글쓰기로 자꾸 조각나는 자신을 하나로 구성해내려 했다.


병원 생활에서 그는 '호전'되지 못했고 병원의 운영을 이유로 퇴원하게 된다. 퇴원 후의 삶은 혼란스럽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너무 달라진 세상 앞에 역시나 달라진 스스로에 괴로워했다. 이때도 작가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텍스트였다.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 속 에스더처럼 수잰 스캘런도 자신의 삶을 쓰고 기억하고 읽으며 이해하려 노력한다. 절망스럽고 슬프더라도 계속하여 쓴다. 때로는 허구처럼 때로는 진실처럼.

 

["나는 책이란 의사소통에 관한 것임을 몰랐다. 혹시 알았다 해도, 이때 이전까지는 그게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한 권의 책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누군가에게 말하는 한 방식이다. 이 책은 나에게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아감의 다른 방식들을."] -184쪽

 

사실 고립은 어떤 형태든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병실에 갇혀 있을 때나 편견에 가로막혔을 때 혹은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때. 손발이 묶였다는 느낌은 비슷할 것이다. 유무형의 벽을 넘는 것은 결국 연결되었다는 감각이다. 텍스트 속 인물이나 너머의 작가와의 연결, 텍스트를 통한 과거나 미래의 자신과의 연결을 통해서 고립은 일시적인 현상이 될 수 있다.

 

특히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 사이에 놓인 현재의 나는 이 모든 나를 이어가면서 상처를 발견하고 상실을 인지한다. 인지된 상실은 바닥 없는 늪이 아니다. 채울 수도 있고 빈 채로 둘 수도 있다. 다만 어디 있는지 모르던 상실이 함정처럼 발길을 잡아챘다면 이제는 피해갈 수도 있고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상처 상실 혼란 불안. 작가를 집어 삼키던 감정을 인정하고 보듬을 때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충분한 삶의 의미가 되어 견디는 힘이 자라난 것이다. 그에게는 부딪히고 쓰러지고 난 다음 마주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 책 역시 막다른 길을 만난 누군가에게 그러한 울림으로 찾아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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