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크기변환]아마데우스.jpg

 

 

살리에리의 시선으로 다시 쓴 한 인간의 고백 연극 <아마데우스>는 인간이 품은 가장 원초적인 욕망, 인정받고자 하는 갈망을 나타낸다.

 

같은 인물인 모차르트를 다루면서도 뮤지컬 <모차르트!>가 천재의 고뇌와 자유, 예술가의 해방을 노래한다면 연극 아마데우스는 정반대의 결을 취한다. 이 작품은 신에게 사랑받지 못한 인간의 절망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파괴적 모습을 그린다.

 

 

 

신의 사랑을 독점한 자, 그리고 버림받은 자


 

극은 철저히 살리에리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모차르트는 객관적인 인물이 아니라 살리에리의 내면에서 증폭된 환상과 열등감의 투영물이다. 그렇기에 관객이 만나는 모차르트는 언제나 살리에리가 구성한 이미지 속에서만 존재한다.

 

작품의 중심에 선 살리에리는 “욕망을 갖게 했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라는 대사를 통해 자신의 존재적 결핍을 고백한다. 그는 독실한 신앙심으로 음악에 헌신해온 인물이지만 하늘은 그에게 천재성 대신 ‘천재를 알아보는 능력’만을 부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능력은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그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자’이면서 결코 ‘창조할 수 없는 자’이다.

 

신은 살리에리에게 시기와 경외를 동시에 안겼다. 경박하고 철없는 모차르트가 신의 목소리를 빌려 음악을 창조하는 순간마다 살리에리는 인간의 한계를 실감한다. 그는 신을 향한 경배와 저항, 신의 불공정함에 대한 원망 속에서 점차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1막의 후반부 살리에리의 독백은 작품의 전환점이 된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면서도 그 불공정함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이 폭발한다. 이후의 모든 장면은 이 독백의 연장선이 된다. 신에게 버림받은 자의 내면 독백이 2막에서는 죄의식과 자기 파괴의 서사로 구체화된다.

 

이처럼 <아마데우스>는 사실상 한 인물의 내면극에 가깝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객관적 현실보다는 살리에리의 기억과 해석을 통해 재구성된 ‘주관적 진실’에 더 가깝다. 이런 서사 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모차르트의 천재성보다 그를 바라보는 살리에리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크기변환]커튼콜.jpg

 

 

 

레퀴엠의 진실


 

그들이 함께 레퀴엠을 써 내려가는 장면은 살리에리가 끝내 닿을 수 없던 천재의 세계를 손끝으로 더듬는 순간이었다. 살리에리는 죽음을 앞둔 모차르트의 영혼을 통해 자신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의 경지를 목격한다. “모차르트는 죽지 않아. 그는 음악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테니까.” 이 대사는 예술의 불멸성을 선언함과 동시에 살리에리 자신의 유한함을 자각하는 비극적 순간이다.

 

뒤이어 등장하는 “이 곡은 들판을 뛰어놀던 아이를 위한 진혼곡이었다”는 깨달음은 더욱 깊은 울림을 남긴다. 들판의 소년은 다름 아닌 살리에리 자신의 상징이다. 순수했던 자신은 이미 사라졌으며 남은 것은 신을 원망하고 천재를 질투하는 빈 껍데기뿐이다. 결국 레퀴엠은 모차르트를 위한 곡이 아니라 신에게 버림받은 인간 - 살리에리 자신을 위한 곡이 된다.

 

 

 

평범함을 향한 용서


 

우리는 모두 모차르트로 태어나길 꿈꾸지만 결국 살리에리로 살아간다. 타인의 재능을 시기하고 인정받고자 발버둥 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작품은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잔혹할 만큼 투명하게 드러낸다. 음악은 신의 언어이지만 그 음악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은 지극히 세속적이다. 아마데우스는 바로 그 모순의 아름다움 - 신성에 대한 열망과 인간의 결핍이 교차하는 지점 - 을 무대 위에 구현한다.

 

결말부에서 살리에리는 휠체어를 박차고 일어나 젊은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그는 더 이상 신의 사랑을 구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처럼 평범한 인간들에게 말한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대사가 객석을 향해 울려 퍼질 때 나는 그것이 살리에리의 자기 고백이자 우리 모두에게 향한 말처럼 다가왔다. 살리에리가 진정으로 용서하고 싶은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예술의 세계에서 언제나 ‘2등’으로 살아야 했던 인간이 마침내 자기 존재를 긍정하는 순간이다.

 

‘평범한 자들의 수호자’라는 선언은 재능 중심 사회에서 좌절하는 모든 예술가와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천재의 신화 뒤에는 언제나 무수한 살리에리들이 존재하며 그들의 절망 또한 인간의 예술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작품은 잔혹할 만큼 아름답게 보여준다.


우리는 살아가며 크고 작은 질투와 열등감을 품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아마데우스>는 ‘신에게 사랑받지 못한 자의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결국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컬쳐리스트.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