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 하세요?” 그리고 “직업이 뭐예요?”.
이 두 질문을 나를 꽤 곤란하게 만든다. 직업이나 하는 일이 없어서 말할 거리가 없는 게 아니라, 어떤 걸 말해 줘야 하는지 고민된다.
대외적으로 현재 내 직업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지만 이걸 직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고, 여러 행사의 운영 요원으로 일 하기도하고, 지금처럼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면 나의 직업은 학생인가, 프리랜서인가, 크리에이터인가.
직업이라는 개념을 어느 방향에서 접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이 이런 망설임을 불러왔다. 직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보자면 경제활동을 통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수입을 얻는 행위, 혹은 나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활동을 사회 속에서 이어가는 것이다.
하나는 맞고 다른 하나는 틀린 흑백논리는 아니다. 두 정의의 비율을 제 입맛 따라 적절하게 배합해서 잘 버무려가며 어떤 게 가장 나에게 맞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직업의 정의를 확립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우리는 적성과 흥미, 그리고 현실이라는 무게추를 손에 쥐고 어떻게 무게를 맞출 것인지 골몰한다.

Kotliarskyi via Unsplash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제활동이라는 개념의 직업을 가져본 건 20살 때였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쓸 생활비가 필요해서 PC방 야간 알바를 시작했다. 낮에는 입시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미필 남자를 받아주는 곳은 잘 없었기에 뽑아주기만 하면 앞뒤 안 가리고 출근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이 일들이 미래를 위한 거름이 될 수 있을지라던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같은 고민은 할 여유도 없었고, 그럴 처지도 아니었다. 그렇게 인생은 돈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아침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잠들고, 오후에 일어나 학원으로 출근해서 다시 새벽까지 PC방에서 일하던 고통스러운 시간은 나에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의 답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다. 그 나이대의 누구나 으레 그렇듯 명확한 답은 못 찾았지만 일단 궁금한 일은 다 해보자는 답을 내렸다.
그렇게 1년 주기로 이전에는 해본 적 없었던 새로운 일을 했다.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식당에서 홀 매니저와 주방 요리사로, 프리랜서 영어 번역가로, 다시 입시 영어 강사로, 파티 플래너까지 거친 후 나는 다시 학생으로 돌아와 미래를 위한 발판을 쌓아가고 있다.
일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삶 속에서 찾은 결론은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정도의 소득을 보장하면서 자아실현을 위한 기반을 쌓을 수 있는 활동’이 좋은 직업이라는 것이다. 일이라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서 싫어도 참고 하는 거라고들 한다.
현실은 분명 냉정하니 이상적인 것만 좇다가는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상을 내다 버리면 다음 한 걸음을 내디딜 원동력을 잃어버린다. 현실에 갉아 먹혀 뼈만 앙상하게 남는다. 마치 수면 이외의 시간은 모두 일과 노동에 쏟아부었던 그 시절의 나처럼 말이다.
균형이 중요하다.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해서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재미도 없는 일이라도 수입을 위해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경험도 반드시 하나 이상은 배울 점이 있다. 그 속에서 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발판들을 찾아다니면 현실에 잡아먹히지 않는다.
하나둘씩 발판들을 모아 계단을 쌓고, 그 계단을 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바라던 나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직업’이라는 문 앞에 설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