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수업에서 노조에 대해 들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국가별 노사관계가 어떤 식으로 이뤄져 있는지, 가령 영국의 경우 노조의 발전이 크지 않고 스웨덴의 경우 노조의 힘이 강하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평소 이런 내용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흥미롭게 들었으나, 그 수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스웨덴의 경우 노조의 가입률이 70% 정도 되는 반면, 한국의 노조 가입률은 겨우 10% 정도라는 것. 그 이야기를 듣고 왜 한국은 노조 가입률이 낮을까, 취업을 하게 된다면 꼭 노조에 가입해야지,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어두운 소극장의 한구석에 앉아 이런 대사를 듣게 된다. 사람들은 노조 싫어해.
![[크기변환]KakaoTalk_20251025_215758980.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0/20251025222422_dzppyvyy.jpg)
<낭만적인 개소리>는 75m 높이의 굴뚝에서 1년이 넘도록 고공농성을 하던 고진옹과 허수인이 회사로부터 합의 약속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드디어 굴뚝에서 내려와 환호하던 순간도 잠시, 회사는 말을 바꿔 노조를 상대로 소송을 통보한다. 억대의 액수에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고 이미 굴뚝에서부터 동료 홍성호의 자살 소식에 농성 포기를 고민하던 고진옹은 결국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극을 보는 내내 고진옹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연극 내내 그가 끊임없이 갈등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겪게 되는 내면의 갈등, 1년이 넘는 농성 속에서 이미 지쳐버린 그에게 계속 싸워야 한다며 호소하는 동료들, 쉽사리 마련하기 어려운 합의금과 대학 진학을 포기할 거라는 아들까지. 끊임없는 투쟁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는 건 (그를 설득하던 회사와 안상태 의원의 말처럼) 쉬운 길을 두고 고통을 받으려는 미련한 행동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극을 보는 내내 그러한 지점들이 마음 한구석을 찔러댔다. 부당 해고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왜 개개인에게 삶을 이어나가지도 못할 만큼 큰 부담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왜 국회의원은 사측과 노조 사이를 조율하기는커녕 회사의 편에 서 있는가? 적어도 고진옹에게 들이닥친 많은 사건들이 단순한 의지 문제, 배신행위로 치부되기에는 개인이 버틸 수 없는 구조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노조 활동을 해왔음에도 사명과 타협 사이에서 흔들리다 결국 회사와 합의하는 모습이 더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현실과 타협하고자 했던 고진옹은 결국 다시 75m 상공에 오르고 만다. 그것은 회사의 문제가 계속되기 때문이기도, 자신의 선택이 결국 동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이어졌기 때문이기도, 노동자들의 고통을 선거에 이용할 생각만 하는 안상태 의원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진옹은 자신의 옆에서 한결같이 포기하지 말고 싸워야 한다고 말하던 허수인이 사실은 이미 사망한 동료였으며 그의 모습은 자신의 내면 혹은 희망이 반영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흔들림 없는 허수인을 부러워했지만 결국 허수인의 모습이 고진옹의 모습이기도 했던 것이다.
연극은 결국 고진옹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마냥 절망적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저만큼의 희생과 투쟁이 이어진다 해도 무언가를 바꾸는 게 그리 쉽지 않음을,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리 다정하지 않음을. 그러나 고진옹의 삶이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투쟁이 끝나지 않고 오랜 시간 타오를 불꽃으로 이어질 것임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크기변환]KakaoTalk_20251025_215744909.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0/20251025222839_qrnfyiks.jpg)
극 중 고진옹은 같이 싸우고 이겨내자 말하던 것이 세상을 잘 몰랐기에 할 수 있었던 ‘낭만적인 개소리’라고 말한다. 나는 여기에 진정한 낭만적인 개소리는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신경 쓸 것이 날로 늘어가는데 고작 노동자들에게 발목 잡히는 게 말이 되냐며 인원 감축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말하던 사측의 입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혀 낭만적이지 않지만, 적어도 그들의 이야기가 일종의 이상적인 헛소리라는 뜻에서 말이다.
아마 고진옹과 우리네가 살아가는 세상은 쉽사리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정당한 권리를 외치는 목소리는 ‘개소리’ 취급을 받을 것이고, 사측은 교묘하고 부당한 온갖 방법을 동원해 노조가 문제인 것처럼, 혹은 문제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오늘도 목소리를 들어달라며 상공으로 향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할 테고, 여전히 누군가는 그들을 싫어할 것이다. 그러니 고진옹이 다시 굴뚝에 올라간 것도, 연극을 끝까지 보고 나온 내가 씁쓸함과 희망을 동시에 느낀 것도 여전히 낭만적인 개소리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장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모여 언젠가는 큰 들불이 될 것을 나는 믿는다. 아주 점진적인 변화가 모여 어느 순간 뒤를 돌아봤을 때 지금의 현실과는 다른 모습이 펼쳐져 있으리라 믿는다. 한때 개소리로 치부되던 그 낭만이 언젠가 세상을 바꾸리라 믿는다.
그리하여 '낭만적인 개소리'가 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의 목소리가 아닌 사측의 말도 안 되는 항변을 의미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